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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흉기 난동’ 유가족이 말하는 ‘유족구조금’의 모순
경찰이 지난해 8월 흉기 난동 사건으로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일대를 통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검찰, 치료비 우선 지급 후

가해자 최원종에 ‘구상권’


최 “피해회복 노력” 참작 요구

유족 “양형에 영향 알았다면

절대로 안 받았을 것” 반발


“왜 국가가 범죄피해자 유족한테 준 돈이 살인자에겐 ‘돌파구’가 되는 건가요?”

2023년 8월3일 퇴근 인파로 가득했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서현역 인근에서 ‘묻지마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한 남성이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행인들을 들이받은 뒤 인근 백화점으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퇴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벌인 테러로 총 14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그중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김혜빈씨(20)도 있었다.

그는 가해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5일간의 연명치료 끝에 숨을 거뒀다. 치료비만 3300만원에 달했다. 거액의 병원비가 나온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검찰은 피해자 가족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검찰청을 통해 치료비를 우선 가족들에게 지급했다. 추후 가해자 최원종에게 일부 금액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국가의 지원은 되레 ‘덫’이 되고 말았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최원종 측은 2심에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니 판단에 고려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이 구상권을 행사해 자신이 피해자의 치료비 3300만원 중 일부를 냈으니 유리하게 참작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이었다.

김씨 유가족은 즉각 반발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검찰이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면 양형에 참작될 수 있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며 “알았다면 치료비도 안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원종 측이 주장한 ‘피해자를 위한 노력’은 실질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이 아니지 않으냐”며 “유족구조금도 최원종의 형이 확정되기 전까진 신청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범죄피해자보호법상 국가는 살인 등 강력범죄로 사망한 피해자 유족에게 구조금을 지급하게 돼 있다. 실제 김씨 유가족의 우려처럼 이러한 지원금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향신문이 대법원 판결문 열람서비스를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 10년간 ‘유족구조금 지급’을 언급한 1·2심 판결문 53건 중 37건(약 70%)이 이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국가가 구조금을 피해자 측에게 먼저 지급하고 피고인이 돈을 갚았는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사례들도 있었다. “유족들은 유족구조금을 수령했고 이에 대해 피고인이 구상채무를 부담해야 하는 점”(2023년 1월13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결)을 참작한 판례나, “피고인의 출연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의 유족이 국가로부터 유족구조금을 지급받은 점”(2015년 12월30일 서울동부지법 판결)을 참작한 판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국가가 피해자에게 준 구조금을 피고인의 감형 근거로 삼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피고인은 법적인 절차에 따라 채무를 갚았을 뿐, 직접적·자발적으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실제로는 구상금 등을 갚지 않아 피고인이 피해 회복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피해자 측 국선변호사로 일해온 곽아량 변호사는 “국가가 피고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이를 갚는 경우는 아주 적다”면서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구상권) 집행이 너무 어렵다고들 한다. 변제된 게 아닌데 참작요소로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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