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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건축왕' 남모씨는 1심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빌라왕’ 이모(32)씨는 2018년부터 분양대금보다 임대차보증금이 높게 설정된 부동산을 매수하는 ‘무자본 갭투기’로 재산을 불렸다. 서울 강동구, 도봉구 등에서 사들인 빌라는 2022년 395채로 늘었다. 지난 2019년 5월 TV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에 출연해 ‘깡통 전세’를 정상 매물인 것처럼 소개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는 2020년 7월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 적용으로 막대한 세금을 부과받았다. 허술한 ‘돌려막기’는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박민 판사는 지난해 12월 “거액의 세금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부동산을 매각해 차익을 얻겠다는 막연한 구상만 있었을 뿐 구체적 대책을 전혀 마련해두지 않았다”며 이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118명에게 보증금 315억원 피해를 준 혐의다.

최근 1년간 전세사기 주범 97%가 실형
6일 국민일보가 지난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최근 1년간 선고된 전세사기 사건 1심 판결문 58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사건 주범 56명(96.6%)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을 누가 주도했는지에 따라 임대인, 컨설팅업자, 분양대행업자 등이 각각 주범으로 분류됐다. 56명의 평균 형량은 징역 5.9년이었다. 집행유예는 사기 금액이 각각 6000만원과 2억8000여만원인 2명에 불과했다.

피해자 수로 분류해보면 피해자 10명 이상 사건이 전체의 74.1%(43건)를 차지했다. 주범 43명이 모두 실형을 받았고 평균 형량은 7년이었다. 사건 규모, 역할 등에 따라 징역 3~15년이 선고됐다.

피해자 100명 이상인 이른바 ‘빌라왕’ 등 5명에게는 평균 12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피해액으로 분류 시 100억원 이상 사기 사건 주범 9명이 평균 징역 11.3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법원이 형법상 사기죄에 선고 가능한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2명이었다. 사기죄 형량 상한은 10년이지만 여러 범죄를 함께 저지르면 5년을 가중해 처벌할 수 있다.

“자식뻘에 무거운 짐 지워” 꾸짖은 법원
법원은 가해자들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면서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인 피해자들이 인생의 출발선에서 뛰쳐 나가보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 주저앉아 울고 있다(부산 전세사기 사건)”, “자식뻘인 사람들에게 지운 무거운 짐에 큰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인천 건축왕 사건)”고 꾸짖었다.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변호사는 “피해자의 법 감정에 비해선 약해 보일 수 있지만 전세사기가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형량도 크게 늘어난 추세”라고 평가했다. 신 변호사는 조직적 전세사기 범행을 처음 고소한 사건인 ‘강서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했다. 신 변호사는 “과거에는 전세사기를 개인 민사사건으로 봐서 수사조차 잘 되지 않았는데 법원의 엄벌 기조로 시각이 바뀌고 있다”며 “단순히 재산 피해가 아니라 삶의 기반을 흔드는 범죄라는 점을 고려한 결과”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최근 전세사기 판결 경향에 대해 법정형 한도 내에서 최대한 높은 형량을 선고하려는 고심이 엿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체 평균 형량(5.9년)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강해진 형량이라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가 수백명인 대규모 전세사기를 일으켜도 현행법상 한계로 최고형이 징역 15년에 그치는 부분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사기는 2022년 사회 문제로 부상해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2020년 무렵 일부 악성 임대인의 대규모 갭투자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전국에 각종 ‘빌라왕’이 등장했다. 부산 전세사기 조직에 가담한 A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부산지법 형사4단독 장병준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2020년부터 전셋값이 빠르게 상승했고 일부 빌라는 보증금과 매매가 차이가 없어져 무자본 갭투자가 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2년의 전세 기간이 만료되는 2022년부터 피해가 속출했다.

정부는 2022년 7월부터 검·경·국토교통부 합동 특별단속을 진행해 1년 2개월간 전세사기 1765건을 적발하고 5568명을 검거했다. 이중 481명이 구속됐다.

두 딸과 함께 범행해 ‘세모녀 전세사기’로 알려진 김모(59)씨도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세모녀 사건 피해자들을 대리한 공형진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중한 처벌이 계속되면 업자들이 같은 수법으로 전세사기를 벌이진 않을 테니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추가 기소된 공범들까지 유죄가 나오면 판결을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양형 이유에서 피해자 대부분이 20‧30대 청년층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대전에서 전세사기를 벌인 폭력조직원 출신 주범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대전지법 형사7단독 박숙희 부장판사는 “세입자 대부분이 대학생, 신혼부부, 청년 등 부동산 계약 경험이 적은 사회초년생”이라며 “보증금이 재산의 전부 내지 대부분이었던 피해자들이 심각한 재산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바지 임대인’ 배후로 지목된 컨설팅업자, 분양대행업자 등도 실형 선고를 피하지 못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 연모(39)씨는 서울 구로구, 경기도 부천, 인천 등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전세계약과 매매계약을 함께 진행하는 ‘동시진행’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일당에게는 범죄조직단체 조직죄도 함께 적용됐고 연씨는 징역 10년, 주요 업무를 맡은 팀장과 명의 대여자(바지 임대인)도 각각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부동산 시장 탓” 변명 안 먹혀
임대사업자가 “부동산 시장이 급변했을 뿐 사기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해도 예외 없이 중형이 선고됐다. 부산에서 229명의 피해자를 낳은 50대 여성 최모씨 사건을 심리한 부산지법 동부지원 박주영 부장판사는 “이런 범죄를 촉발하는 전세제도나 금융시스템 등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탐욕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즉시 멈춰야 한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보증보험, 경매 등을 통해 피해가 회복됐으니 사기가 아니라는 피고인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서수정 판사는 ‘1세대 강서구 빌라왕’으로 불린 이모(70)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면서 “일부 피해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보증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반환받았으나 그만큼 피해가 HUG에 전가된 것일 뿐 피해 회복으로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신 변호사는 “HUG에 투입된 공적 자금을 고려하면 오히려 국가적 손해까지 발생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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