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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식당에 앉아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한 끼니를 대신하고 있다. 중국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Z세대(1995년~2009년 출생)는 심각한 실업난과 자국 경제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며 '초저가 소비'에 매달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매기 쉬(29)는 매일 점심을 인근 국영 식당에서 해결한다. 10~15위안(약 1800~2800원)만 주면 큰 접시에 요기할 만한 음식이 한 가득 담아져 나온다. 국가 지원을 받는 국영 식당 주 이용객은 주로 노인들이었지만, 최근엔 쉬와 같은 젊은 고소득 직장인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라도 돈을 더 아끼고 저축해야만 안전하다 느낀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위기와 높은 청년 실업률 등으로 중국 경제가 심각한 부진을 겪으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의식주 전반에 걸쳐 '초저가 소비'가 이어지고 있다. 저가 메뉴에 무제한 리필이 되는 국가 지원 국영 식당에 소비가 집중되고 있고, 가장 적은 돈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거지 밥상'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올 초부터 이어온 이 같은 초저가 소비 열풍은 지속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압박하는 상수가 되고 있다.



반짝 트렌드 아닌 '생존 투쟁' 중
NYT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은 특히 중국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의 Z세대(1995년~2009년 출생)가 자국 경제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며 '초저가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가장 적은 돈으로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메뉴를 뜻하는 '충구이(窮鬼·거지) 세트'가 경쟁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맥도날드나 KFC 등에서 진행되는 무료 시식 행사나 반값 할인 행사들을 요일별로 목록을 만들어 SNS상에 공유하거나 직접 최저가 식재료를 공수해 밥·국·반찬 등으로 단출한 식단을 만드는 식이다. 격식 있는 민간 레스토랑은 폐점이 이어지고 있지만, '2위안(400원) 빵집'과 같은 프랜차이즈들은 빠르게 매장 수를 늘리고 있다. 중국 기업 정보 제공 업체 '치차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에서 폐업한 음식점은 45만9000곳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2% 급증한 수치다.

사찰의 템플스테이도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명상 등 잘 짜인 프로그램을 따르며 세 끼 식사를 다 주는데도 80위안(1만5000원)밖에 하지 않아 '짠테크'를 하는 중국 젊은 층에게 호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판 에어비앤비로 불리는 숙박공유업체 샤오주(小猪·Xiaozhu)는 지난 2월 춘제(중국 설) 기간 Z세대 이용자의 '사찰' 검색이 24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뱌오샹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중국학 연구위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초저가 소비를 "단순히 반(反) 소비 흐름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환멸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발표된 중국의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시장 예상치(4.6~4.8%)를 뛰어넘는 5.3%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표와 달리 실질 소비 심리는 한껏 얼어붙은 상황이다. 문제는 젊은 층의 초저가 소비 만성화가 중국의 경기 부양에 장기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천저우 홍콩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가형 소비로의 전환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라며 "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며, 이 때문에 '초저가 소비'가 더 확산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널드 로우 홍콩과학기술대학 공공정책연구소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일본의 (만성적 디플레이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기지 않으면 중국 현재 경기 둔화 흐름은 장기화할 것"이라며 "2035년까지 중진국 경제로 도약하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야망 실현도 늦어질 것"이라 분석했다.

하나에 2위안(약 380원) 밖에 하지 않는 빵을 사기 위해 중국 젊은층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사진 샤오홍수 캡처



중국發 '초저가 소비' 연쇄 작용
이 같은 중국 시장 소비 위축과 디플레이션 압박은 세계 산업, 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명품계 큰 손'이라는 아성과 달리 당장 중국 젊은 층의 초저가 소비 확산으로 명품 브랜드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찌, 발렌시아가 등을 소유한 케링그룹의 올해 1~3월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약 20% 감소했다.

중국 명품 시장 전문매체 징데일리의 줄리에나 러 편집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명품 브랜드의 중국 시장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2022년 명품 시계 브랜드 오메가와 중저가 브랜드 스와치 협업 사례처럼 씀씀이에 민감해진 중국 젊은 층에 맞춰 '가성비' 제품을 내놓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도 문제다. 중국의 내수 소비가 부진해 재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자국 제품을 헐값에 해외로 내다 팔고 있다. 값이 싸지면 표면적으로 소비자가 이로워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산업 자체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헐값의 중국 상품을 수입하게 된 나라들이 자국 내 물가 하락으로 경기 회복이 더뎌지는 디플레이션을 덩달아 겪게 될 우려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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