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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을 맞은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서 한 어린이가 인형을 안은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초등학생 A군은 평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서울 마포구의 한 지역아동센터로 향한다. A군 아버지는 기술공이다. 일감이 불규칙해 일이 있는 날은 오래 근무할 때가 많다. 어머니는 음식점에서 저녁 늦게까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A군을 포함해 매일 센터를 찾는 아동 14명의 부모는 모두 비슷한 처지다. 늦은 밤까지 일을 해서 방과 후 자녀를 돌볼 여력이 없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센터는 오후 8시가 되면 차로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준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부모가 집에 없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센터는 제2의 집이나 다름 없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시설장과 생활 복지사는 부모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센터는 2년째 신입생이 없어 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 정원 10명 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운영비·인건비가 끊기게 돼 사실상 폐업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센터장 유모씨는 센터 뒤편 다세대 주택촌을 가리키며 “한때 저 곳에서만 15명이 우리 센터를 다녔는데 이젠 아무도 없다”고 5일 말했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취약 아동들을 돌봐주던 지역아동센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4295개소였던 센터는 지난해 4230개소로 60곳 가량 줄었다. 이미 지난 1월과 3월, 서울 금천구에 있는 신광지역아동센터와 광주 북구 청소년전용지역아동센터가 폐업했다. 최선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사무총장은 “올해 하반기 전국 지역아동센터 40곳 이상이 폐업할 것 같다”고 전했다.



저출생 심화로 돌봄 대상인 아동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2013년 4분기 4만9608명이었던 서울 마포구 0~14세 인구는 2023년 4분기 3만3866명으로 줄었다. 또 다른 지역아동센터장은 “학생 모집을 위해 주변 어린이집을 방문해 보지만, 어린이집 졸업생도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수도권 등 돌봄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에서도 폐업이 잇따르는 또 다른 이유로 비싼 임대료가 꼽힌다. ‘2022년 전국 지역아동센터 통계조사’에 따르면 전국 지역아동센터 1328곳이 월세로 운영된다. 전국의 센터가 부담하는 평균 월세는 65만원이었다. 서울의 경우 12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임대료가 높았다. 정부 지원 기준에는 임대료 등 비용을 고려한 지역별 차등 지원은 없다. 이 때문에 아동 수를 늘리는 것 외에는 임대료 격차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는 게 센터 측의 설명이다.

센터가 문을 닫는 사이 취약계층 아동의 돌봄 사각지대는 커지고 있다. 현행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시설이 폐업하는 경우 아동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시스템은 없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마포구 소재 지역아동센터 한 곳이 폐업했는데 당시 센터를 다니던 아동 중 한 명만이 다른 시설로 옮겨갔다고 한다. 나머지 아동들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최 사무국장은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가정 대부분은 학원이나 유료 돌봄시설을 보낼 여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오승훈 울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아동센터는 지역 내에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감싸는 중심점”이라며 “국가가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운영비를 늘리고 임대료를 100%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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