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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6 『선택할 자유』 밀턴 프리드먼

우리나라는 지금 의대 정원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의대 교수들은 사표를 던졌고, 전공의들은 파업을 결의했다. 정부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한의사 제외시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명)보다 적고, 고령화로 의사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의사가 늘면 필수과와 지방 근무에 대한 기피 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을 갑자기 늘리면 의료인력의 질 하락이 우려되며, 인구 감소로 의료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의료비 증가와 이공계 인력 이탈 등의 문제가 있다고 반박한다.

지난달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뉴스1

뭐 양측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찬반 논란이 치열하니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 확대가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표를 낼 정도로 큰 문제인가? 기존 3000명이던 의사를 매년 2000명 더 배출한다면 우리 경제가 지는 추가 부담은 많이 봐도 1조원(연봉 5억원*2000명) 수준이다. 참고로 전문의 연봉은 2022년 기준 봉직의 3억5000만원, 개원의 4억원 정도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2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서 1조원의 추가 지출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는 아니다.

밀턴 프리드먼에게 의대 증원에 대한 답을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대학과 학생에게 맡기라"고 할 것이다. 정부는 대학이 의대를 설립하거나 정원을 늘리겠다고 나서면 제대로 교육할 환경을 갖췄는지, 교수진은 충분하지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 이공계 전공자를 늘리는 만큼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도 괜찮다. 의사가 너무 늘어나면 어쩌냐고? 그건 의사나 의대생이 고민할 문제지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의사가 늘어나 병원에서 자리를 잡기 어려워지거나 개업해도 큰 소득을 올리기 어려워지면 자연히 이공계로 눈을 돌리는 학생이 늘기 마련이다. 다만 시간이 걸리고 어느 정도 혼란도 각오해야 한다. 이런 부작용을 막겠다고 정부가 적정한 의사 규모를 정할 필요는 없다. 효율적인지는 차치하고라도 그게 적정하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애초에 프리드먼은 국가가 인증하는 면허제도 자체에 부정적이다.

프리드먼은 이 책 '선택할 자유'를 통해 경제, 사회,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정부가 무언가를 정하기보다는 개인에게 선택의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이 늘수록 자유는 줄어들고, 그만큼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제한만 준칙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개인 재량에 맡겨야 한다. 심지어는 마약과 매춘까지도 시장에 맡겨야 부작용이 적다. 불법화하고 단속할수록 화대나 마약 가격은 올라가고 갱들이 개입한다. 마약 딜러나 매춘부의 안전 문제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합법화하는 편이 낫다. 정부는 마약 남용이 없는지, 미성년자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일이 없는지 같은 부분만 관리하면 된다.

우리나라에도 정부 개입고 규제가 시장을 이상하게 왜곡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택시 총량제'를 도입한 개인택시의 경우 면허 값이 서울의 경우 1억원 안팎이다. 광주 화성 양주 세종 등은 2억원에 달한다. 그만두는 운전자로부터 사는 방법밖에 없으니 갈수록 값이 오른다. 면허 제한을 풀면 택시가 늘어나겠지만 비싼 돈을 주고 면허를 산 기사들의 반발에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정원 확대에 극렬하게 반발하는 의사들과 무엇이 다른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이라 그런가? 택시도 손님의 생명을 책임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의사만큼 선호하는 변호사는 어떤가. 연 300명 정도던 사법고시 합격자는 2000년대 들어 1000명으로 늘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도입하면서 2010년대 중반부터는 2000명까지 증가했지만, 판검사가 사표를 내거나 변호사가 파업하지는 않았다. 변호사의 자질이 심각하게 저하했다는 한탄도 들어보지 못했다. 변호사 대접이 좀 박해진 건 사실이지만.

2018년 12월 카카오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며 전국 택시업계가 파업에 들어갔다. 운행을 중단한 택시들이 가득 차 있는 대전의 한 택시회사 차고지.

시장에 맡긴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반칙을 더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프리드먼은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서도 "단, 게임의 룰을 지켜 사기나 속임수 없이 자유 경쟁에 임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는 애초에 기업을 믿지도 않았다.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겉으로는)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뭐 우리나라에서도 통하는 얘기다. 20여년간 정보기술(IT) 분야를 취재했는데 이동통신업체들의 반응이 딱 저랬다. 말로는 늘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입자의 이익을 보장한다지만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오거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시장을 잠식하면 정부에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도서정가제로 할인판매를 막고 있는 출판업계나 정부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금융업계 모두 규제 안에서 경쟁을 피해 먹고 사는 '적과의 동침'을 즐기는 중이다.

기업을 흘겨보기는 하지만 정부는 더더욱 믿지 않는다. 연방정부에게 사하라 사막의 관리를 맡겨보라. 5년 안에 모래가 부족해질 것이다. 프리드먼의 말이다. 그래서 민영화를 선호한다. 1970년대 미국 철도회사는 자동차와 항공기의 발달로 쇠퇴 일로였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 철도는 있어야지'라는 철도회사의 로비에 주민과 정치인들이 호응하면서 텅 빈 열차가 보조금을 받고 다녔다. 영국에서는 고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채굴비 높은 석탄 광산을 유지했지만, 막상 석탄을 쓸데가 별로 없어 연료용 석유를 수입했다. 항공 수요가 없어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면서도 '우리 지역에도 공항 하나는 있어야지'라고 세금을 투입하고, 쌀이 남아도는데도 '농촌을 살리자'며 비싼 값에 쌀을 수매하는 어느 나라가 생각난다. 괜히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등장한 것이 아니다.

시장보다는 정부가 더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 이런 내용을 담은 '포획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신자유주의는 왜 그렇게 정부를 불신할까. 1982년 노벨상을 받은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1911~1991)가 답했다. 기업이 규제를 즐길 수도 있다는 '포획이론(capture theory of regulation)'이다. 규제가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정부가 기업을 잡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기업이 정부를 포획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목표는 수익의 극대화다. 그럼 관료의 목표는? 뇌물을 받지 않는다면 부보다는 권력, 권위, 퇴임 후의 대접 등이 될 것이다. 관료들은 예산을 부풀리고 규제를 늘리는 방법으로 이를 달성한다. 시민의 이익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정부의 규제는 실제로는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아주 많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네오클래식의 향연- 현대의 고전 풀어 읽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5635

인류와 AI 시리즈
에피소드0 공각기동대, 시로 마사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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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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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3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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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부크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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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5 세계화의 단서들, 송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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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6 선택할 자유, 밀턴 프리드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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