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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54회 열린 '마라톤 대회' 부실 논란
러너 앞에서 유턴하고, 차량 코스 진입 빈번
행사장만 있으면 안전관리계획 없어도 개최 
1인당 수만 원씩... 돈벌이 수단 악용 소지 커
지난달 28일 부산 기장읍 오시리아 물음표공원에서 열린 제6회 기장바다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이 뛰는 앞에서 차량이 유턴하고 있다. 이영하씨 제공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무려 354회. 전국 방방곡곡 연중 수시로 열린다. 별다른 장비 없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 인기도 높다. 하지만 이런 인기에 편승해 일부 마라톤 대회가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부실 운영에 따른 안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회를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참가자들이 피해를 떠안으면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달릴 환경조차 안 갖춰져 있어"

지난달 21일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에서 열린 '제21회 부산마라톤' 홈페이지에 게시된 항의글. 부산마라톤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21일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에서 열린 '제21회 부산마라톤' 참가자들은 대회 직후 성토를 쏟아냈다. 대회 공식 홈페이지에는 "갑자기 차가 나타나 (러너들이) 흩어지고 난리였다" "대형사고가 안 난 게 기적"이라는 후기가 쏟아졌다.

10km 코스를 달린 김송이(33)씨는 "시작하자마자 차량이 코스를 막아서 러너들이 당황해서 엉켰다"며 "마라톤 대회의 기본인 '달릴 환경'조차 갖추지 않은 대회였다"고 전했다. 보다 못한 경찰이 개입했다. 당시 현장에 나간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주최 측 요청은 없었지만 안전사고 위험이 너무 커 보여 교통정리를 도왔다"고 했다.

이 밖에도 △부정확한 기록 집계 △교통 통제 실패 △코스 안내 미흡 △약속했던 음료·간식·기념품 미지급 등의 일이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대회를 주최한 부산광역시육상협회(이하 협회)를 사기죄로 집단 고소할 계획이다. 주최 측이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아 국세청 신고도 진행 중이다.

이 단체는 대한육상연맹 등에서 승인받지 않은 민간단체다. 지역명 등을 활용해 부산시 등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행사로 오인한 참가자들도 많았다.

러너 앞에서 유턴하고, 사망사고도

지난달 28일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물음표공원에서 열린 제6회 기장바다마라톤대회 현장 사진. 이영하씨 제공


지난달 28일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 '제6회 기장바다마라톤'도 교통 통제가 안 돼 차량이 마라톤 코스에 진입했다. 10km 코스에 참가했던 이영하(38)씨는 "참가자 바로 앞에서 차가 유턴해서 아슬아슬했다"며 "나중엔 아예 차에 막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이런 대회인 줄 알았다면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외에 코스 안내 미흡이나 식수·간식 부족 등의 문제도 제기됐다.

지난달 27일 서울 양천구 안양천 일대에서 열린 양천구 주최 '제13회 양천마라톤'에서도 안전 문제가 반복됐다. 참가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역방향으로 오는 자전거와 동선이 겹쳐 위험한 장면이 몇 번씩 나왔다" "러닝 구간이 좁아 자전거와 충돌할 뻔한 순간이 많았다"는 후기들을 남겼다. 양천구 관계자는 "곳곳에 안전요원을 배치했지만 워낙 나들이객이 많아 빚어진 일 같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7일 경북 영주에서 열린 '2024 영주소백산마라톤대회' 이후에도 공식 홈페이지에 "풀코스 거리가 GPS 거리와 차이가 1km 났다" "코스 완주하고 가니 간식이 떨어졌다고 안 주더라" "개인 기록 안내가 오지 않는다"는 등 항의 글이 올라왔다. 영주시 관계자는 "코스는 대한육상연맹 실측을 받았다"며 "개인 기록 전송 등의 문제는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마라톤 대회에서 사망사고도 있었다. 2020년 7월 경기 이천에선 오전 3시에 '울트라 마라톤 대회'(일반 마라톤 풀코스보다 긴 거리를 뛰는 마라톤)를 달리던 참가자 3명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당시 이천시 관내 55명의 선수가 달리고 있었지만, 대회 주최 측은 안전요원을 단 1명도 배치하지 않았다.

유명무실 안전규정... 초보자는 대회 검증부터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2024 서울 하프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술한 마라톤 대회 안전 규정이 부실 운영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간 마라톤 대회는 개최 장소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 등의 시설 이용 승인만 받으면 된다. 지자체의 현장점검 한 번 없이 대회가 치러진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인파 밀집 사고 예방을 위해 지난해 국민체육진흥법(제13조의 2)에 '체육행사 개최 시 안전관리조치 조항'이 신설됐지만 유명무실하다.

이 조항에 따르면 1,000명 이상이 밀집하는 체육행사를 개최하려는 자는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안전교육·점검 시행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문제는 계획을 수립하지 않거나, 그 내용이 부실해도 처벌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도로나 교통 통제, 안전요원 배치 등 안전관리조치 없이도 대회를 강행할 수 있다.

대회 개최가 손쉽다 보니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크다. 1,300명(낙동강관리본부 추산)이 참가한 부산마라톤은 1인당(10㎞ 코스 기준) 참가비가 3만5,000원이다. 대회 개최로 약 4억5,500만 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하지만 1~3등 상금은 3만~5만 원에 불과했다. 다른 대회들도 1인당 수만 원씩의 참가비를 받으면서 대회에서 제공하는 간식이나 기념품 등은 빈약하다.

전문가들은 마라톤 대회 운영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용범 부산시육상연맹 부회장은 "마라톤은 많게는 수만 명이 수십 킬로미터를 움직이는 경기이기 때문에 차량 통제부터 식수 배치, 연계 병원 마련 등 철저한 준비가 필수"라며 "안전관리계획 제출을 의무화하고, 대회 허가제를 시행하면 안전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육상연맹 관계자는 "초보 마라토너들은 집 근처 소규모 대회보다 검증된 대회에 나가는 걸 추천한다"며 "△주최·주관 단체의 공신력 △대한육상연맹 공인 트랙 여부 △안전관리계획 여부 등을 확인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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