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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에서 2019년 5월 22일 탈진해 쓰러진 채 발견된 아기 산양이 강원 인제군 국립공원공단 종복원기술원 북부복원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산양은 1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왜 죽었는지를 아무도 몰라요. 알려고도 하지 않고요."

올겨울 설악산과 강원 화천군 및 양구군
일대를 무려 24번 찾아 3만여㎢에 걸쳐 산양을 조사한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
의 말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에게 지난 겨울은 유난히 혹독
했다. 지난달 중순까지 무려
750마리
가 목숨을 잃었는데 발견되지 않은 죽음을 포함하면 실제 사망 수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태어나서 지금껏 산양을 본 적 없는 기자가 올해 2월 말 6시간 동안 설악산 일대를 돌며 만난 산양만 무려 40여 마리다. 폭설로 인해 도로 근처까지 쫓겨 내려온 것이다. 산양은 사람들과 눈싸움을 하듯 응시했지만 실은
힘들어도 도망가야 할지, 자리를 일단 지켜야 할지
온갖 고민을 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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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국립공원 도로 옆에 탈진해 있는 산양.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올해 산양이 어디서 얼마나 죽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19년부터 올해 2월까지
문화재청
으로부터 멸실(사망)신고 기록
을 받아 보았다. 어떤 분석도 돼 있지 않은 엑셀 파일이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연도별, 지역별로 자료를 분류했고,
545마리 중 416마리(76.3%)가
화천군과 양구군에서 죽었음(본보 3월 7일 보도)
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또 이 지역에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와 농가가 친 울타리가 집중돼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부가 주장하는 폭설 이외에 울타리가 산양의 죽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산양이 왜 이렇게 떼죽음을 당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해당 기간
접수된 멸실 신고서
를 받아 보았다. 하지만 파일을 받아 보고는 행정편의주의에 깜짝 놀랐다. 마리당 멸실 신고 내용이 담긴 파일과 사진이 첨부된 파일 2개로 구성돼 있어 총
1,090개의 파일을 일일이 열어 봐야 했다
.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산양 사망 원인. 박구원 기자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활동가들과 함께 일일이 사체로 발견된 산양의 추정연령, 성별, 사망 원인 등을 분류해 분석했다. 하지만 작성기관이나 작성자에 따라 내용 편차가 커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산양 10마리 중 6마리는 탈진해 굶어 죽었고
, 앞서 언급한 화천군과 양구군의 경우에는 아사 비율이 무려 77.4%에 달한다는 점(
본보 4월 18일 보도
)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민단체와 정부의 자료를 분석하면서
왜 정부가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을 언론과 시민단체가
힘들여 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도 났다. 요즘 같은 첨단 기술 시대에 앱(응용소프트웨어)으로 제대로 분류해 입력하게만 해도 됐을 텐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강원 양구군 방산면 오미리 도로에서 만난 산양이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 모임 제공


설악산국립공원 미시령옛길의 눈 속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산양.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공


환경부
는 최근 ASF 차단 울타리를 부분 개방하기로 하고 이를 사회관계장관회의에 보고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부분 개방 정도가 미약해 벌써부터 효과를 나타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말 못하는 산양의 죽음은 자칫 묻힐 뻔한 파일
로만 기록돼 있었다. 울타리 개방과 함께 이제라도 그들이 남긴 기록을 철저하게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산양의 소리 없는 외침이 곧 개원하는
제22대 국회에도 울려 퍼지길 기대
한다. 산양의 죽음을 방관한 관계기관에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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