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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서재정의 한반도, 한세상
이스라엘 학살 3만4535명

ICJ, 이스라엘에 ‘학살 방지 명령’
3일 뒤 가자 떠나려는 차량 공격
구조 요청하던 6살 아이까지 살해
출동한 적신월사 대원도 주검으로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학생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교내 해밀턴 홀을 점거한 뒤 가자에서 학살된 소녀의 이름을 딴 ‘힌드의 홀’로 명명한다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AP 연합뉴스

힌드 라잡. 이 이름만은 기억해 달라. 3만4535명을 기억하는 것이 버겁다면.

이 세상에서 보낸 햇수는 6년에 불과했다. 가자시티에서 살았던 6년, 하루하루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랑해주는 부모와 친척이 있었고, 신나게 같이 놀았던 사촌들이 있었다. 그날, 삼촌하고 사촌들과 같은 차를 탔던 게 잘못이었을까.

이스라엘이 자행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집단학살은 먼 나라의 일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잠깐만은 힌드 라잡을 생각해 달라. 그가 이 세상 마지막 숨을 쉬었던 것이 기아 자동차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벌써 석달 전 일어난 일이었지만 잊지 말아 달라. 올해 1월29일 힌드는 삼촌 가족과 차를 타고 가자시티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영영 가자시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스라엘군의 총탄이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총탄 때문에 영영 도망칠 수 없게 됐다.

삼촌·숙모·사촌언니도 죽고…

영영 도망칠 수 없게 된 건 힌드 라잡만이 아니다. 소박하나마 행복을 일구던 아파트가 무너지고, 학교가 파괴되고, 병원이 파손됐다. 3700만t이 넘는 건물 잔해 밑에도 도망치지 못한 힌드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 달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구와 연장이 없어 맨손으로 치워도 치워도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무겁게 버티고 있고, 애타는 마음으로 구멍을 헤집어 봐도 1만명 이상이 그 밑에 깔려 있다.

힌드는 최후까지 살아 있던 생존자였다. 삼촌과 숙모가 먼저 죽임을 당했다. 사촌 언니도 죽었다. 이미 주검이 된 그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직 죽지 않은 15살 라얀이 외국에 있는 친척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랑 아빠는 벌써 죽었어요. 언니도 죽었어요. 나랑 힌드만 살아 있어요.”

“걱정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바로 앰뷸런스를 보내줄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친척은 바로 가자시티의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에 연락했다. 구조를 요청했다. 라얀의 전화번호를 주고 연락하면 라얀이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탱크는 그 자동차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라얀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는 사이에 총격을 가했다. 둔탁한 총격 소리와 라얀의 비명이 수화기를 울렸다. 전화는 끊겼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해 12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집단살해 혐의로 제소했다.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위반해 “팔레스타인인들을 말살하려는 의도를 갖고 집단살해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집단살해와 같은 인종청소 범죄의 재발을 막자고 체결된 협약이다. 이제 이스라엘이 그 협약을 위반했다는 남아공의 제소에 콜롬비아·니카라과·튀르키예가 동참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소송을 통해 이미 지난 1월26일 집단학살 방지, 가자지구 주민의 인도적 상황 개선 등 잠정조치를 이스라엘에 명령했다. 그날, 힌드 라잡은 아직 살아 있었음을 기억해 달라.

그 사흘 뒤, 삼촌과 숙모, 사촌들이 다 살해됐다. 그래도 힌드 라잡은 살아 있었다. 적신월사 직원이 다시 전화했을 때 받은 것은 그였다. 탱크가 오고 있다고,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하지만 다시 전화가 연결됐다. 힌드는 살아 있었다. 끊어졌다 이어지고 희미해졌다가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캄캄해지고 있어요. 캄캄한 게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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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 쓸고 간 지역엔 집단 무덤

통화가 이어지고 있던 세 시간, 적신월사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스라엘군의 침공 뒤 작전지역에는 구급차를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허락을 받았다. 힌드의 차가 있는 주유소로 직원 두 명이 급파됐다. 그런데 힌드에게 접근한 유수프 자이누와 아흐마드 마드훈이 뭔가 이상하다고 호소했다. 자신의 앰뷸런스를 이스라엘군이 레이저로 조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총소리, 폭발음. 연락은 끊겼다. 힌드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이 공격을 시작한 지 200일, 언론인 137명, 의료진 356명, 유엔 구호기구 직원 178명이 살해됐다. 4월 말까지 팔레스타인인 7만7704명이 부상당했고 3만4535명이 학살됐다. 그중 70%가 여성과 아동이었다. 이 모든 숫자가 무의미하다면 힌드 라잡이라도 생각해 달라.

이스라엘군이 퇴각하고 나서야 친척들이 돌아갈 수 있었다. 연락이 끊긴 지 12일 만이었다. 그때서야 힌드 라잡의 주검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의 기아 차량은 벌집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 옆에 앰뷸런스가 있었다. 유수프와 아흐마드의 시신도 거기 있었다. 완전히 파괴된 구급차 근처에는 미사일 파편들도 널려 있었다. 엠(M)830에이(A)1, 미국산 탱크 파괴 미사일이었다. 그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에 260억달러의 지원을 결정했다. 팔레스타인에도 10억달러 인도적 지원을 배정했다.

이스라엘군이 진입했다 물러난 곳에서 집단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나세르 병원 부지에서 주검 400여구가 묻힌 집단 무덤이 발견됐다. 알시파 병원 부지에서도 집단 무덤이 발견됐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도 집단 무덤에 대한 국제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손이 묶여 있거나, 벌거벗겨진 채로, 혹은 병원 가운을 입은 채로, 치료용 의료 튜브가 삽입된 채로 마구 묻혀 있는 주검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힌드 라잡은 기억해 달라.

지금 라파흐에는 140만명의 피난민이 몰려 있다. 이스라엘군의 학살과 파괴를 피해 집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 몰린 마지막 피난처다. 피난민은 마지막 피난처에서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어야 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기도 공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힌드 라잡이 가자시티를 벗어나려고 그토록 발버둥 쳤지만 그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있었을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1200명이 살해됐다. 136명이 아직도 인질로 잡혀 있다. 이 중 몇명이 살아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힌드 라잡을 기억해 달라. 컬럼비아대학 학생들이 점거농성했던 해밀턴홀을 ‘힌드의 홀’로 명명했음도 기억해 달라.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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