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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0만 원 의혹 고급 한식비·영화 '브로커' 관람비 공개하라"

지난 2022년 6월, 취임하고 한 달이 지난 즈음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휴일을 맞아 서울 성수동의 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영화관 매점에서 1천 원을 추가해 카라멜·갈릭 반반 팝콘을 사고, 제로콜라도 샀습니다. 그리고 일반석에 앉아 팝콘과 음료를 먹으며 칸 영화제 수상작인 '브로커'를 봤습니다.


앞서 5월에는 부부가 함께 서울 청담동의 한 고급 한식당에서 450만 원어치 저녁 식사를 했다는 의혹 제기가 한 유튜브 매체의 보도로 나왔습니다. 정확히 비용을 누가 냈는지, 얼마인지 그 '팩트'는 아직 대통령실이 정보를 공개한 바 없어 의혹만 커졌습니다.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이 당시 영화관 비용과 식사 비용 등 대통령실의 지출내역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대통령실은 국가안보와 경호상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며 거부했습니다.

지난해 시민단체는 행정 소송을 냈고,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저녁식사 비용과 영화관람 비용,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 지출내역을 공개하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항소심도 같은 판단을 내놨습니다.

제가 직접 재판에 들어갔을 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대통령실)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 비용은 피고(대통령실)가 부담한다"는 짧은 말이 선고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1심과 2심 판결문을 받아 살펴보니 대통령실 측의 '꼼수'와 이를 질책하는 판사의 '성난' 언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답변 회피는 예산지출 감시받지 않겠다는 일종의 권도(權道)"

권도(權道) : 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도.

짧은 기자생활을 하면서, 또 판결문들을 읽으면서 '권도'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봤습니다.(최근 2년간 대법원 시스템에 공개된 판결문을 검색한 결과, 권도라는 말이 나온 건 이번 1심 판결문 하나였습니다.) 임기응변이라는 뜻인데, 옳고 바른길이란 뜻인 정도(正道)와 반대되는 말로 쓰입니다. 1심 판결문은 '권도'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대통령실 측의 대응을 비판했습니다. 왜였을까요?

2022년 5월 13일 서울 청담동 한식당 식사비용에 대해 대통령실은 정보 비공개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가 공개될 경우 국가안보와 경호상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소송이 제기되고 4개월이 지난 뒤에 갑자기 "그런 정보가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원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외부 식당에서의 저녁식사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식사비용도 당연히 지출됐을 건데, 이제 와서 비용지출 관련 정보가 없다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보공개법상 정보의 존재 여부 자체부터 비밀로 할 수 있도록 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여기서부터 '권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래 판결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 1심 판결문 중>
"애초에 대통령실이 그러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를 그대로 밝히면 될 것이지, 불투명하고 모호하게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의 기본권인 알권리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예산지출을 감시받지 않겠다는 일종의 '권도'를 취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법원은 그러면서 식사비와 영화 관람비 모두 국가안보와 경호상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12쪽짜리 판결문에서 조목조목 대통령실의 주장을 반박한 뒤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그대로 인정한 2심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에도 판사의 지적이 담겼습니다. 1심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식사비 정보가 없다고 주장한 대통령실을 향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제1-3행정부 2심 판결문 중>
"대통령실은 2022년 5월 저녁식사 비용 지출내역을 보관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대통령실 명의의 공문서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재판부의 석명(명령)에도 응하지 않았다"


식사비 지출내역 정보가 없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에 대해 법원이 그 근거를 내놓으라고 명령했는데, 대통령실이 그마저도 따르지 않았다는 걸 판결문에 굳이 추가한 겁니다.



□"정보로 안 만들어서 정보가 없다?"‥"해운대 횟집 비용도 공개하라"

지난해 4월,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을 위해 윤 대통령이 부산을 찾았습니다. 당시 해운대 횟집 앞에서 사진 한 장이 찍혔습니다. 횟집 만찬 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 장제원 의원, 광역단체장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진입니다.


이번엔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가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당하자, 법원에 회식 비용은 얼마였는지, 또 누가 냈는지 공개해달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지난 2월에 나온 1심 결과는 시민단체의 승리. 이번에도 대통령실은 황당한 주장을 했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대통령실은 정보를 비공개하면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제2부 1심 판결문 중>
"경비를 대통령비서실의 예산으로 집행하기는 했으나, 업무추진비 또는 특수활동비로 집행해 이 사건 정보를 일정한 매체에 기록된 ‘정보공개법상 정보’의 형태로 생산하거나 보관·관리하고 있지 않아 이를 공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이 관련 자료를 새롭게 가공·생성하여야 하므로 이 사건 정보는 대통령실이 보유·관리하는 정보가 아니고…"


대통령실 예산을 쓰긴 했는데 정보로 만들어 두질 않았고 자료를 공개하려면 만들어야 해서, 대통령실이 보유한 정보가 아니라는 주장. 정보공개 청구를 꽤 해본 저로서도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 논리입니다. 법원도 단칼에 "업무추진비든 특수활동비든 예산으로 썼으면 지출증빙서류 등이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단했습니다.



□ "대통령실 직원 명단도 공개하라"‥대통령실 1년간 정보공개 6건 패소

한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 아들과 김건희 여사의 지인, 권성동 여당 대표 대행의 지인이 의혹의 인물로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추가로 김건희 여사와 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함께 다닌 전직 이벤트 대행회사 김승희 대표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론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김 선임행정관은 이후 의전비서관으로 일하다 지난해 10월 자녀 학폭 무마 의혹으로 사퇴했습니다.) MBC를 포함한 여러 언론사들과 시민단체가 사적 채용 논란을 취재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직원 명단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고, 거부당했습니다. 참여연대와 뉴스타파가 행정소송을 벌였습니다.


대통령실은 황당한 주장을 폈습니다. 첫째, 대통령실 직원들은 팀별로 배분해 그 업무를 구분할 뿐, 업무분장표 등에 관한 정보는 생산 안 했다. 둘째, 정보가 공개되면 대통령실 직원의 임면에 대한 사후적 통제절차가 생겨, 인사권자의 재량을 제한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다. 셋째, 직원들이 로비나 위협, 악성 민원 등 외부의 부당한 영향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직원 명단을 공개하라"며, 구체적으로 소관 세부 업무만 제외하고 직원 이름, 소속부서, 직위, 직급 등을 공개하라고 일부 공개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그 무엇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제5부 1심 판결문 중>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누구인지는 어느 공무원보다 더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공적 관심사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이를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국정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 이익에 크게 기여한다고 봐야 한다. (중략) 로비, 위협, 악성민원 등 가능성은 직원 명단을 아예 비공개함으로써 대응할 문제라고 보이지 않는다. 행정안전부, 법무부 등 상당수 정부조직뿐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소속 직원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데 대통령실만 다르게 취급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고 보인다."


① 지난해 8월엔 대통령실 직원 명단 일부 공개 판결, ② 9월엔 한식당과 영화 관람 비용 공개 판결, ③ 올해 1월엔 대통령실 공사 수의계약 공개 판결, ④ 2월엔 부산 해운대 횟집 비용 공개 판결, ⑤ 3월엔 대통령실 비서실 운영규정 공개 판결, ⑥ 4월엔 대통령실 공직자 감찰조직 운영규정 일부 공개 판결까지 최근 대통령실은 정보공개 소송에서 사실상 연달아 6번 패소했습니다.

과거 다른 정부들도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비서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자료를 공개하라는 소송. 1심에선 일부 서면보고서의 등록시점 등 일부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단했지만 재판 도중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그 뒤에 열린 2심에선 1심 판결이 취소돼 각하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도 김정숙 여사의 옷값 등을 포함한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며 한국납세자연맹이 행정소송을 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문 정부 청와대에선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우려가 있는 정보라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비공개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정보 공개를 명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문 대통령 퇴임 뒤 나온 항소심에선 청구가 대부분 각하됐습니다.
 



□ "대통령실의 버티기" "예산 낭비"‥정보공개 전문가들의 지적

매번 반복되는 정보 비공개에 맞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하승수 변호사/부산 해운대 횟집 비용 소송 제기]
"대통령실에서 정보 공개하지 않고 거부하면 행정 소송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공개 판결이 난 정보도 또 비공개를 하는 사례들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건건이 소송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사실 권력기관들의 정보 공개를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국회 차원의 정보공개 제도 개선 같은 것들이 입법적으로 논의가 돼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비용 문제도 제기됩니다. 현재 대통령실을 대리해 행정소송을 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로펌 소속입니다. 확인된 로펌만 세 곳입니다. 이들의 수임료 역시 세금입니다. 최소 수천만 원으로 추산됩니다.

[최용문 변호사/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소송 담당]
"정부 기관이 소송을 수행할 때는 정부에 소속된 공익법무관이 소송을 대리하는 경우도 많고 또 정부법무공단이라는 게 있습니다. 정부법무공단은 법적으로 정해 놓은 국가 법무법인이에요. 이전 정부 때는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쪽에 사건을 의뢰해서 진행하도록 법적 제도가 돼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에서 외부에 다른 법무법인을 선임해서 사건을 진행하는 건 굉장히 세금 낭비가 아닌가…"

"文정부 정보공개소송 전수조사 착수" 윤 대통령 취임 직후인 재작년 6월 이런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대통령실이 전임 문 정부의 '정보공개소송 대응 현황' 전수조사에 착수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당시 보도된 여러 매체 기사엔 하나같이 이런 내용이 담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가급적 적극적이고 투명하게 국민에 공개하겠다고 거듭 약속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원이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단한 6개 소송에 모두 항소했습니다. 여전히 재판은 진행중이고,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고,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관련 보도 : "정보 공개하라" 잇단 판결‥대통령실은 버티기? (04/30 뉴스데스크 김상훈)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594021_36515.html#none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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