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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갑순 사격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감독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깜짝 금메달
세계 명사수 레체바 잡은 '고교생 총잡이'
대회 첫 금 여갑순, 마지막 금 황영조
1988 서울 올림픽 버금가는 성과
은퇴 후 사격 국대 기대주 지도
'제2의 여갑순' 고교 2년 반효진 지목

편집자주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찍어낸 전설들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과 현재의 삶을 조명하고 은퇴 후 제2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만의 건강 관리법 등을 함께 들어봅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여갑순이 지난달 22일 경북 포항실내사격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재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감독을 맡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여갑순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첫 금메달을 명중시켜 한국에 '갑순이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지도록 했다. 포항=박시몬 기자


1992년 한국의 여름은 유독 뜨거웠다. 찜통더위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날아드는 연이은 ‘금빛 낭보’에 전국이 뜨겁게 타올랐다. 당시 한국 선수단은 대회 첫날 사격 여갑순부터 마지막 날 마라톤 황영조까지 금메달 소식을 전달했다. 이때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2개로 종합 7위에 올랐다. 1988년 안방에서 열렸던 서울 올림픽(금12·은10·동11·종합 4위)에 버금가는 쾌거였다. 시차가 있는 유럽에서 당시 역대 최고 성적을 내며 더위에 지친 국민들에게 행복한 여름을 선물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고의 신데렐라는 '고교생 총잡이' 여갑순이었다. 사격 대표팀 가운데 유일한 고교생 신분으로 태극마크를 단 막내가 어느 누구도 예상 못한 ‘금빛 총성’을 울린 것이다. 대회 전체 1호 금메달이기도 해서 전 세계가 깜짝 스타 탄생의 순간을 지켜봤다. 당시 최고의 세계 명사수 베셀라 레체바(불가리아)를 물리친 고교생이 ‘갑순이’라는 친숙한 이름을 쓰고 있어 한국에서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현재는 사격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감독을 맡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영웅 여갑순을 지난달 22일 경북 포항실내사격장에서 만났다.

세계에 떨칠 이름 ‘갑순이’

작명소에서 세계에 떨칠 이름이라고 지어준 대로 실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여갑순.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갑순은 어릴 때 친구들에게 딱 놀림 받기 좋은 이름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외할머니가 동네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인데, 부모도 말리지 못했다. 작명소에서는 태어난 날과 사주에 ‘갑순이’라는 이름밖에 없다고 했다. '이 이름을 지으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다'고 강조했다. 외할머니의 고향 전남 곡성에서 작명가에 의해 정해진 이름은 진짜 18년 만에 큰일을 냈다. 1974년생 여갑순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 여갑순은 “놀림을 많이 당해서 불만이 많았던 이름”이라고 어린 시절을 돌아본 뒤 “하지만 올림픽 메달을 따고 운동 선수로 이름을 떨쳤으니까 괜찮은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성격도 남달랐다. 또래 여자 아이들처럼 고무줄 놀이나 인형을 갖고 놀기보다 밖에서 뛰어노는 걸 즐겼다. 1남 2녀 중 첫째로 동생들이 밖에서 얻어맞고 돌아오면 대신 나가 골목을 평정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해태 팬이었던 부모님 영향을 받아 동네 친구들과 실제 야구도 좋아하고 즐겨 했다. 선동열과 한대화를 좋아하다가 나중엔 이종범의 팬이 됐다. 여갑순은 “여자 아이인데도 총이나 칼 갖고 노는 게 재미있었다”며 “그다음에 야구를 많이 보다 보니까 매력에 빠져서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도 세우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야구는 여자 팀이 없어 친구들과 노는 수준에서 즐기기만 했다.

야구공 대신 총...사격 천재의 탄생

여갑순은 사격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입문 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총놀이를 좋아했던 소녀 여갑순은 서울 청량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운명처럼 총을 잡았다. 호기심에 시작한 사격이 인생을 바꿨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일치시키고 방아쇠를 당겨 표적을 맞추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여갑순은 “여자들은 총을 만지는 게 쉽지 않아 사격 특별활동반에 들어갔는데, 동아리 팀이 사격부가 됐다”며 “처음에는 부모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거의 한두 달은 몰래 운동을 했었다”고 밝혔다.

한 번 정하면 밀어붙이는 외할머니를 닮아서인지 여갑순은 ‘직진’을 했다. 부모의 반대에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해 설득했다. 첫 번째는 국가대표, 두 번째는 한국 신기록, 마지막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팀 창단 멤버로 정식 선수의 길을 걸었다. 그때가 1988년 2월, 서울 올림픽 개막 7개월 전이었다. 중학생 여갑순은 첫 번째 목표인 태극마크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재능이 남달라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입문 3년 만인 1991년 서울체고 1학년 때 국가대표 꿈을 이뤘다. 여갑순은 “사격이 엄청 즐겁다 보니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빠른 시간 안에 국가대표도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갑순이 만세, 전국이 환호

여갑순의 금메달로 전국이 축제 분위기가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2년 7월 26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첫날 사격경기 여자공기소총 마지막 10발째를 앞둔 사대. 빨간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갑순은 두 차례 호흡을 가다듬는 등 무척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올림픽 첫 금메달 종목이라 온 세계의 눈이 여자소총에 쏠려 있다. 더구나 옆에는 어릴 적 우상인 세계 최고 스타 레체바가 버티고 있었다. 마지막 격발 ‘딱’ 하는 소리와 함께 9.8점이 찍혔다. 잘 쏜 점수는 아니지만 결선 합계 498.2점으로 495.3점의 레체바를 2.9점 차로 제쳤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이겼다’라는 함성 소리와 박수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첫 금메달을 딴 여갑순의 이웃 주민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도 난리가 났다. 서울 이문동 집에서는 TV 중계방송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택시운전사 아버지 여운평씨와 어머니 박연순씨가 여갑순의 동생 둘과 나란히 “우리 갑순이 만세”를 외치며 전 국민과 감격을 함께했다. 동네 주민들도 “어린 시절 골목대장이었던 갑순이가 드디어 큰일을 해냈다”고 기뻐했다. 지역 국회의원은 수박과 맥주를 보내기도 했고 동네가 잔치 분위기였다. 당시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찜통더위에 바다와 산으로 갔던 피서객들도 결선 장면을 숨죽여 지켜봤다. 만세 함성이 진동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작 당사자는 무덤덤, 나중에 알고 눈물 쏟아

너무 긴장한 나머지 금메달 획득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최종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는 여갑순.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정작 우승이 확정될 때 여갑순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겉으로 비칠 때는 여고생답지 않게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경기 운영이 돋보였는데, 속으로는 너무 긴장해 정신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여갑순은 “시차 적응도 안 됐고, 한식파라 음식을 잘 못 먹어 당일 컨디션이 안 좋았다”며 “결선에 들어갈 때는 긴장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나 스스로에게 ‘정신 차려라. 여기까지 와서 지금 뭐 하냐’고 다그쳤다”고 털어놨다.

본선을 레체바와 같은 395점으로 통과한 여갑순은 결선에서도 긴장이 이어져 첫 6발을 쐈다. 자신의 점수를 불러주는 심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만큼 정신이 없던 상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레체바보다 훨씬 좋은 점수를 꾸준히 찍어 격차를 벌려갔고, 마지막 2발이 9.9점, 9.8점으로 흔들렸음에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여갑순은 “경기가 끝나고도 메달을 딴 줄 몰랐다. 마지막 2발을 쏠 때 집중력이 깨져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냥 빨리 돌아가서 잠을 자야겠다 생각을 먼저 했다”며 “주변에서 소리가 들리고 감독님이 껴안고 우는데, ‘3위 안에 들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도핑테스트에 갔는데 코치님이 금메달을 땄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 최고 선수들이 다 있는데, 내가 어떻게 금메달을 따느냐. 장난하지 말라’고 했다. 안 믿으니 기록지를 보여줬고, 그때서야 놀라서 울었다”고 회상했다.

파리에서 '제2의 여갑순'은?

여갑순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감독이 제46회 충무기 전국 중·고등학생 사격대회에서 심판으로 참가해 선수들의 사격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 포항=박시몬 기자


바르셀로나의 영웅 여갑순은 이후 올림픽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30대 후반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총을 내려놓은 그는 현재 ‘제2의 여갑순’을 찾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한국 사격은 여갑순 이후 진종오, 김장미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꾸준히 나왔지만 여자 공기소총에서는 금메달이 끊겼다. 그러나 올해 파리올림픽에서 다시 희망이 피어나고 있다. 국가대표 후보 선수로 직접 지도했던 대구체고 2학년 반효진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유일한 고교생으로 출전해 전체 1위로 파리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여갑순은 “국가대표 후보 선수로 들어와 동계훈련을 마치고 올림픽 선발전을 뛰었는데 진짜 기대하지 않게 1등으로 파리올림픽에 간다”며 “아직 어린 선수라 국제대회에서 뛰는 걸 한번 봐야 된다는 주변 얘기가 있지만 기록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단단해진 느낌이다. 5~6월 예정된 국제대회에서 만약 지금 기록을 유지하고 메달을 딴다면 올림픽에서 메달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꺾이지 않는 ‘타이거즈 야구’ 사랑

여갑순 감독이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포항=박시몬 기자


야구 선수 꿈을 가질 정도로 애정이 컸던 야구는 지금도 가장 즐겨 보는 종목이다. 응원하는 팀 역시 타이거즈의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는 KIA다. 여갑순은 “월요일 빼고 야구는 다 챙겨 본다. 중계를 못 볼 땐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본다”며 “고참급 양현종, 최형우, 김선빈 선수를 좋아하고 어린 선수 중 요즘 잘하고 있는 김도영 선수도 좋아한다”고 웃었다. 마음속 1순위 선수는 아직도 이종범이다. 이종범의 아들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정후(샌프란시스코)가 키움이 아닌 KIA에서 뛰었다면 1순위 선수가 바뀌었을까라는 질문에 “이정후 선수가 KIA에서 뛰었다면 너무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이종범 선수가 1번”이라며 “경기하는 모습 자체만으로 좋았다. 도루하고 안타 치고, 세리머니 하는 것들이 약간 묘하게 빠지는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적인 성격으로 운동을 다양하게 했지만 족구를 하다가 크게 다친 이후 움직임이 많은 운동은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시간이 날 때 산책을 하며 건강도 챙기고 힐링을 한다. 여갑순은 “강아지를 데리고 집 근처 경춘선길을 걷거나, 사격연맹 사무실이 있는 올림픽공원을 점심 먹고 한 바퀴 돌기도 한다”며 “특별한 건강 관리법은 없고 그냥 즐겁게 생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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