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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 ㆍ이계정씨 부부와 10남매가 어린이날을 앞두고 3일 경남 의령군 의령예술촌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셋째 예훈, 넷째 예한, 아빠 박성용씨와 막내 예빛, 여섯째 예명, 아홉째 예율, 엄마 이계정씨, 첫째 예서, 일곱째 예령, 여덟째 예후, 둘째 예아, 다섯째 예권. 송봉근 기자
‘부자 도시’로 불리는 경남 의령군에는 자녀를 10명이나 낳은 ‘자식 부자’가 있다. 박성용(50)ㆍ이계정(48)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이들 부부와 10남매에게 어린이날은 평일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가족이 움직여야 하는 등 여러 가지 형편상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기 힘들어 평소처럼 지낸 경우가 많아서다.

그런데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을 받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부부와 10남매를 ‘용산 어린이날 행사’에 초청하면서 1박 2일간 서울 나들이를 가게 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이들 열 명 생일 챙기기도 힘든 상황이다 보니 어린이날에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며 “그런데 올해 어린이날에는 대통령도 만나고 가족 전체가 오랜만에 서울 여행을 가게 돼 모두가 설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오후 박씨 집에 들어서자 현관을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신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 책이 잔뜩 꽂힌 책장으로 둘러싸인 거실에는 지난해 5월 태어난 막내 예빛과 예후(5ㆍ여)ㆍ예율(3)이가 함께 놀고 있었다. 이씨는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쉴 틈이 없었다. 박씨는 아이들이 거실 곳곳을 뛰어다니자 이름 대신 “8번~” “9번~” 숫자를 부르며 제지했다. 박씨는 “몇 년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대형마트에 갔다가 여섯째(예명ㆍ12)를 잃을 뻔한 적이 있다”며 “그때부터 어디 이동할 때면 인원수 체크를 위해 번호를 불렀는데 이젠 집에서도 이렇게 아이들을 숫자로 부르고 있다”며 웃었다.

박성용 ㆍ이계정씨 부부와 10남매가 어린이날을 앞두고 3일 경남 의령군 의령읍 집에 모여 인터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송봉근 기자
올해 부산 부경대에 입학한 첫째 예서(20ㆍ여)와 김해외고에 다니는 셋째 예훈(17)이 기숙사 생활을 해 집에 없었지만 두 부부와 여덟 명의 자녀만으로도 38평(128㎡)의 집은 꽉 차 보였다. 안방은 박씨 부부와 8번~10번, 남자방은 4~6번(예한ㆍ예권ㆍ예명), 여자방은 2번(예아)과 7번(예령)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는데 옷과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어 간신히 몸을 움직일 정도로 비좁았다. 이씨는 “집은 비좁지만 그 덕분에 가족들끼리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며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많이 낳은 걸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박씨 부부는 서울 토박이다. 2002년 2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둘 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번듯한 직장에 다녔다. 그러다 2004년 맏딸 예서를, 2006년 둘째 예아를 낳았다. 이후 셋째 예훈이를 임신했는데 주변의 반응이 사뭇 냉소적이었다. “서울에서 아이를 셋이나 낳아 어떻게 키우려고 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았다. 부모님과 친지들도 비슷했다.

결국 이 같은 부정적 시선에 고심하던 박씨 부부는 경남 의령에서 새로운 터전을 꾸리기로 결심하게 됐다. 박씨는 “마침 장인 장모께서 한 해 전에 연고가 있는 의령에 내려와 계셔서 이곳에서 함께 살기로 마음먹게 됐다”며 “여기라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낳아 마음껏 기를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2007년 의령으로 내려온 박씨 부부는 이후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명을 거부하지 않고 일곱 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 박씨는 “원래는 자녀를 세 명 정도 나을 생각이었는데 아이를 낳을수록 기쁨과 행복도 더욱 커지는 걸 실감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열 명이나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식비만 월 200만~300만원이 들었다. 박씨가 입시학원 등을 하고 이씨는 어린이집 교사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단지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가족여행은 커녕 그 흔한 외식조차 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다. 임신과 출산ㆍ육아를 반복하면서 겪은 고통도 컸다.

의령군은 인구 2만5000여 명으로 전남 신안군과 인천 옹진군, 경북 울릉군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소멸 위기’를 겪는 곳이다. 산부인과는 물론 소아청소년과도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창원시와 진주시 등 인근 대도시로 원정 진료를 다녀야 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아이가 아파 가슴 졸이며 도시에 있는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막내 예빛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심장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더욱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서로서로를 돌보고 챙겨주는 모습은 박씨 부부가 버텨낼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됐다.

박성용 ㆍ이계정씨 부부와 10남매가 어린이날을 앞두고 3일 경남 의령군 의령예술촌에서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런 가족애는 밴드 결성으로도 이어졌다. 학창 시절 밴드를 했던 박씨는 음반을 내는 게 꿈이었는데 “못다 이룬 아빠의 꿈을 우리가 이뤄주자”며 자녀들이 기타ㆍ베이스ㆍ드럼 등을 들고 피아노를 치는 박씨와 의기투합한 것이다. 2017년부터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다둥이 밴드’를 가족들은 자칭 ‘박성용과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최근엔 의령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나 행사에도 초청을 받아 공연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이렇게 박씨 부부와 10남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응원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한 장학재단에서는 대학에 들어간 예서의 4년간 학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포스코에서는 지난 3월 1박 2일 가족여행을 지원하기도 했다. 의령군도 넷째 예한이 때부터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정부와 의령군 등에서 매달 나오는 영유아 지원금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박씨는 “의령은 삼성 등 우리나라 대기업 창업주를 다수 배출한 곳이어서 ‘부자 도시’로 불리는데, 저출생 시대를 맞아 10남매를 낳은 우리 같은 ‘자식 부자’도 진정으로 대우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다둥이 가정을 꾸리는 게 진짜 애국하는 길로 여겨질 수 있도록 세간의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 최근엔 강연도 자주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집을 나서기 전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이들 부부는 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보다 열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데 온 정성을 다해야죠. 그렇다고 소중한 생명을 우리 스스로 거부할 생각은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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