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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전남 신안군 대기점도(島)에서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양귀비 밀경작 단속을 펼쳤다. 단속을 지휘한 최재옥 경감은 "섬 구석구석을 뒤지려면 전동킥보드, 자전거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단속 과정에서는 헬맷을 착용했다. 이영근 기자

2일 오후 1시, 신안군 대기점도 선착장에 목포해경 경비정이 닿았다. 햇볕이 쨍한 섬마을에 선글라스를 낀 단속반 11명이 발을 디뎠다. 양귀비 밀경작 단속반이다. ‘뚜벅이 조’ 7명이 숨돌릴 새도 없이 성큼성큼 마을로 들어섰다. 4명은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에 시동을 걸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30분 뒤 ‘뚜벅이 조’에서 적발 1보(報)가 타전됐다. 빨간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주택 뒤뜰에 30㎝ 길이 분홍색 양귀비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꽃망울이 맺힌 양귀비 10주(株)도 있었다. 지난달 단속에서 한 차례 계도를 한 적이 있는 집이라고 한다. 김용기 경위가 주인 서모(76) 할머니를 불렀다.

“담벼락에 양귀비, 저거 농약 안 쳤소?”
“전번에 (단속) 헌 거? 뜯어서 나물 해묵었지.”
“왜 여즉 안 뽑았소? 밭에도 있드만.”
“아, 계속 돋아나드랑께요. 소가 설사해서 멕였는디.”

단속반은 서씨 할머니의 밭에서 양귀비 수십 주를 추가 발견했다. 마당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양귀비는 도합 85주. 50주 이상의 경우 고의성이 입증되면 형사 입건 대상이다. 진술서를 적는 경찰관 옆에서 서씨 할머니의 남편이 “개양귀비 아녀? 씨가 날려서 핀 것인디”라며 울상을 지었다.

단속반에 따르면 적발된 이들이 내미는 오리발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①우리 것 아니다 ②개양귀비다 ③씨앗이 날린 거다. 개양귀비는 마약성분이 없는 관상용 꽃이다. 김 경위는 “털이 없고 매끈한 양귀비와 달리 개양귀비는 줄기와 꽃봉오리 전체에 잔털이 나 있어 구분이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2일 오후 서모(76) 할머니의 뒤뜰, 밭에서 발견된 양귀비를 목포해경 경찰관이 세고 있다. 서 할머니 집에서 발견된 양귀비는 모두 85주였다. 이영근 기자

“이게 뭐시여.”
강동근 경사가 폐가 뒤에서 양귀비 한 무더기를 또 발견했다. 강 경사가 한참을 수거한 양귀비는 총 60주. 성인 허리춤까지 오는 길이의 양귀비 줄기에는 동그란 열매 여러 개가 달려 있었다. 강 경사는 “말라 비틀어지지 않고 싱싱한 것을 보니 누군가가 황급히 잘라 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섬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기 때문에 성명불상자의 소유로 판단해 전량 압수됐다.

이날 단속반이 압수한 양귀비는 모두 202주. 3일까지 목포해경은 1369주의 양귀비를 압수했다. 양귀비 열매에서 추출한 즙은 아편의 원료가 된다. 이 때문에 해경은 양귀비꽃이 만개하는 매년 5월 양귀비 밀경작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단속을 지휘한 최재옥 경감은 “배앓이, 관절염, 설사 등으로 고생할 때 양귀비 열매즙을 달여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어르신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단속 현장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 70대 A씨는 “병원갈라믄 한참을 배 타고 가야하니 키우는 것인디…”라고 말끝을 흐렸다.
2일 오후 목포해경 강동근 경사가 폐가 뒤에 은닉된 양귀비 한 무더기를 수거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노인들 사정을 봐가면서 단속을 게을리할 수 없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종종 심각한 중독 사례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4년 전 목포 시내의 한 유방암 환자가 양귀비를 섬에서 공수해서 달여먹다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

다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전과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검찰·경찰·해경 등 수사기관이 선처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양귀비 밀경사범 1462명 중 60대 이상이 89.5%였다. 또 1412명(96.6%)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해경은 고의성이 입증된 경우, 50주 미만은 경미범죄 심사제도를 활용해 훈방 또는 즉결 심판을 청구한다. 50주 이상의 경우는 일반 형사사건으로 입건된다. 최재옥 경감은 “화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거나 양귀비 술을 담근 경우는 고의성이 입증이 수월한 편”이라고 말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도서지역에서 양귀비뿐 아니라 약물 오남용을 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며 “섬 지역 순환진료, 비대면 전화 진료 등을 통해 상비약을 제때 복약할 수 있게 지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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