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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차출 장기화에 '체념'…금산 9개 보건지소 중 공보의는 4명뿐


금산 금성보건지소 근무하는 김선응 공보의
[촬영 박주영]


(금산=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나이도 많이 먹었고, 문 닫으면 이제 병원 안 가는 거지 뭐…"

농어촌 지역 의료 공백 사태가 석 달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3일 오전 충남 금산군 금성면 보건지소에는 오전부터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병원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충남 시·군에서도 공중보건의(공보의)들이 수도권 등지로 파견되면서 금산에서도 공보의 4명이 9개 보건지소를 맡아 근무하고 있다.

이날은 남이보건지소가 쉬는 날이라 금성면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읍·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금성보건지소를 찾아 진료를 봤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김기형(90)씨도 아내(88)와 함께 방문해 진료를 본 뒤 3개월 치 약을 처방받았다.

김씨는 "요즘 하도 시끄럽기에 병원 진료를 볼 수 있나 먼저 전화해보고 왔다"면서 "마누라도 혈압약을 타야 해서 정기적으로 온다"고 말했다.

금산읍에 살고 있지만 65세 이상 노인 약제비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성면까지 와서 진료를 본다고 설명했다.

진산면 주민 김종환(86)씨도 집에서부터 10㎞를 넘게 달려 아침 일찍 보건소에 도착했다.

김씨는 "고지혈증과 전립선 약을 타러 석 달에 한 번 방문하는데, 오늘은 금요일이라 그나마 사람이 적은 편"이라면서 "의료대란 뉴스도 봤지만, 겁도 안 난다. 이제 나이도 많이 먹었고…암에 걸려도 어쩔 수 있나 싶은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집 가까이에 있는 진산보건지소도 이날 문을 열었지만, 처방만 받을 수 있고 진료는 보지 않아 멀리 금성면까지 오게 됐다.

한때는 금산 지역 보건지소별로 공보의가 1명씩 근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의과 공보의 신규·편입 인원이 매년 감소하면서 순회 진료는 몇 년 전부터 일상이 되고 있다.

금산군 이영진 주무관은 "의대 성비에서 여성 비율이 높아졌고, 공보의나 군의관보다 복무 기간이 짧은 육군 현역병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보니 의료진 공백 사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라면서 "게다가 금산은 도서 지역에 해당하지 않아 우선 파견 대상도 아니다 보니 의료 대란 사태가 아니어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오전 진료만 하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도 의사와 직원이 함께 경로당 등을 돌면서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 정기 교육을 하고 재가 암 환자에 대한 관리를 진행하는 등 방문 교육 사업을 하기 때문에 쉬기는 어렵다.

금성면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김선응(35)씨는 "집이 인천인데, 이번 사태 이후 한 번도 휴가를 쓰지 못했다. 신청했는데 반려됐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70대 이상의 고령 환자가 대부분이고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이라면서 "혈압이나 혈당이 갑자기 치솟을 경우 뇌출혈이나 당뇨성 케톤산증 등 응급 상황에 처할 수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석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보건지소마저 문 닫으면 아예 약을 드시지 않고 관리를 하지 않는 환자들도 많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공보의 복무 만료와 신규 배치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지난달에는 2명이 9개 보건지소를 맡기도 했다.

오전과 오후 번갈아 하루 서너곳을 출장 다니며 진료를 봤지만, 불가피하게 1∼2곳은 진료를 중단해야 했다.

김씨는 "저희 어머니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고혈압약을 타시는데, 갈 때마다 10만원 넘게 든다.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면서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보건지소를 찾는 고령 환자들이 많고, 그런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심스레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2020년에 제가 전공의 2년 차였는데 그때도 그렇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마다 의대 증원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면서 "개업을 하려는 제 친구들도 소아과나 산부인과는 기피하고 성형외과 같은 진료과목을 택하겠다고 하는데 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가 심각한지 그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휴진 안내문 붙은 복수보건지소
[촬영 박주영]


이날 휴진하는 보건소를 찾은 일부 주민들은 진료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복수면 보건지소를 찾은 홍문이(73)씨는 "직원한테 혈압약만 타가면 된다고 말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없어 못 준다고 한다"며 "예전에는 치과 진료도 보고 그랬는데, 점점 진료 보는 과목이 줄더니 이제는 아예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그는 "혈압이 갑자기 치솟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근방에 병원 이거 하나인데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이영진 주무관은 "이장님을 통해 경로당 등에서 마을 방송을 하는 방법으로 주민들에게 관내 보건지소 진료 일정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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