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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혁당 사건으로는 진실화해위 첫 진실규명
1968년 검거돼 무기징역 받고 20년 징역 살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턱 치켜들고 노려봐
1988년 가석방 후 1998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제심관에서 검도를 가르치던 시절 한겨레와 인터뷰했던 오병철씨. 한겨레 자료사진
“중앙정보부 바로 옆방에서 조사관들이 아내를 협박했다. 갓 돌이 지난 딸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방으로 들어와 내 턱을 치켜들고 한참을 노려봤다.”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약 20년간 복역했던 오병철(87)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피해자 인정) 결정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옥살이를 한 한명숙 전 총리 남편 박성준씨가 2022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적은 있지만 진실화해위에서 통혁당 사건 피해자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지난해 6월 통혁당 재건위 사건(1974년) 피해자 박석주씨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나온 적은 있다.

진실화해위는 30일 오후 제77차 전체위원회에서 오씨에 대해 “중앙정보부 조사과정에서 불법구금, 고문·가혹 행위·자백 강요 등을 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같이 의결하고 국가에 대해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사건 신청인 오병철씨는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비봉중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던 중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1968년 7월26일 중앙정보부에 붙잡혔고, 같은 해 9월4일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간첩방조 등의 범죄사실로 기소됐다. 1969년 1월25일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오씨에게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하여 1969년 9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약 20년간 복역한 오씨는 1988년 6월 가석방 출소했다.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재학 시절 교내 검도부를 만들었던 오씨는 출소 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제심관(制心館)’이라는 도장을 차려 2019년까지 검도인을 양성하기도 했다.

통혁당은 1968년 8월24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이 1969년 박정희의 삼선개헌을 앞두고 터뜨린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문화인·종교인·학생 등 158명이 검거되었고, 이들 중 73명이 송치(구속 50명, 불구속 23명)되었으며, 주범으로 지목된 김종태·이문규·김질락 등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도 무기징역을 받았다.

오병철씨는 통혁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문규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 사이로, 196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학사주점’을 통해 지속해서 친분을 유지했다. 통일혁명당 사건이 발생하자 중앙정보부에 의해 ‘이문규계’로 분류되어 1968년 검거됐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오씨를 구속영장 없이 검거하여 구금했다. 오병철씨는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자신의 소속을 밝히거나 영장 제시도 없이 수갑을 채우고, 덩치 큰 사람에 의해 양쪽 팔짱을 낀 채 차에 태워져 남산(중앙정보부)으로 갔다”고 진술했다.

고문·가혹 행위에 대해서도 “하루 이틀 정도 온몸을 타작하듯 때렸고, 맞는 과정에서 발등이 부러져 한쪽 고무신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부었으며, 오랫동안 절뚝거렸다”고 했다. 전기고문 장비를 가지고 와서 위협한 적도 있고, 얼굴에 수건을 덮어 하는 물고문도 당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 또한 오병철씨와 함께 아내 윤일숙씨와 돌이 좀 지난 딸을 영장 없이 연행해 바로 옆방에 배치한 뒤 심문당하고 협박받는 목소리를 듣게 해 부부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기도 했다. 윤일숙씨는 7일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수사기록은 전혀 확인되지 않아 불법감금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위는 법원에 대해서도 “공판 과정에서 신청인이 ‘경찰에 의해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을 부인하고 항소이유서 및 상고이유서에 진술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을 기재하여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각함으로써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 기관으로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오병철씨는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회가 많이 민주화됐고 정의로운 분들이 많아져 좋은 소식을 들었다. 재심까지 갈 생각이고, 다른 억울한 사람들도 해원하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씨는 “그동안 관청 근처는 가지 말자”는 마음이었는데 “변호사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나서 이번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조사실 옆방에서 울던 1967년생 딸에 대해 묻자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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