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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균 기자

‘ABS’ 도입 후 25세 이하 선수 약진

편향이 제거되니 청년 세대가 활약


전통적 시스템, 기득권·엘리트 유리

출신·연줄 ‘중시’ 한국 사회 성찰을


올 시즌 프로야구에는 ‘ABS’가 도입됐다. 자동 볼 판정 시스템인데, 쉽게 말하면 기계 심판이다.

지금까지 스트라이크와 볼은 포수 뒤에 서 있는 주심이 눈으로 판정했는데, 이제 카메라를 이용한 투구 추적 시스템(PTS)으로 공의 움직임을 기계가 판단한다. 미리 설정해둔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면 스트라이크, 통과하지 못했다면 볼이다. 선수들 키를 기준으로 키가 큰 선수는 스트라이크존 영역이 높아지고, 작은 선수는 낮아진다.

개막 한 달이 지났고, 운영상 기술적 문제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다만 자로 잰 듯한 ‘육면체’ 스트라이크존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논란이 나온다. 한화 류현진, SSG 추신수, KT 황재균 등 베테랑들이 이견을 내놓았다. 20년 동안 몸으로 익힌 존과 기계의 존이 다르다는 얘기고, 규칙과 제도 도입에 있어 소통과정이 부족했다는 주장이다. 왜 그렇게 느껴질까.

실제 KBO리그의 스트라이크존은 지금까지 일종의 ‘엘리트 편향’이 작동했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공에 후한 판정이 내려졌다. 투수가 일반적으로 던지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몸쪽 깊숙한 공’은 스트라이크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포수의 사인과 반대로 던진 공, 이를테면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몸쪽으로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더라도, ‘야구적’으로 ‘실수’에 가깝기 때문에 볼 판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포수가 마치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도록 잡는 능력도 ‘고난도 기술’로 인정받았고, 대개 스트라이크가 됐다.

여기에 ‘균형’을 위한 심리적 편향이 더해진다. 3볼-0스트라이크 때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고, 0볼-2스트라이크 때 존이 좁아진다. 점수 차이가 많이 나 이미 승부가 끝났다면 존이 넓어지고, 포스트시즌 같은 관심이 많고 중요한 경기에는 존이 좁아진다. 기계 심판은 이 모든 편향이 제거된다. 이런 편향까지 머리와 몸으로 모두 알고 계산에 넣는 베테랑들이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편향이 제거되니 리그 전체에 묘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OPS(출루율+장타율) 기준 국내선수 상위 30명 중 30세 이상 타자는 23명이었다. 34세 이상도 12명이나 됐다. 25세 이하 타자는 겨우 4명이었다. 메이저리그는 같은 기준 25세 이하 선수가 10명이나 됐다. 반면 올 시즌에는 29일 기준 30세 이상 타자가 19명으로 줄었고 25세 이하 타자가 7명으로 늘었다. 상위 10명 중에는 25세 이하 타자가 4명이나 된다.

투수 역시 규정이닝 50% 기준 스탯티즈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 합계를 따졌을 때 국내 투수 전체 대비 25세 이하 투수들의 비중이 지난해 46%에서 올 시즌 50%로 늘었다. 리그 최고 투수였던 안우진이 부상으로 빠졌고, 문동주, 이의리가 부진과 부상으로 계산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25세 이하 투수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이들 3명을 제외했을 때 지난해 숫자는 31.5%로 줄어든다. 25세 이하 투수들의 기여도가 18%포인트 이상 늘어난 셈이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서 추론해볼 수 있는 합리적 의심과 가설. 판정의 ‘엘리트 편향’은 베테랑 스타에게 유리했던 것 아닐까. 그동안 ‘루키 헤이징’이라 불리는 신인 길들이기 편향이 작동됐던 건 아닐까.

모든 전통적 시스템은 기득권에 유리하게 작동하기 마련이다. 편향이 제거되니 25세 이하 선수들이 활약한다.

우리 사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전통’이라는 외피를 쓴 채 편향이 작동하는 ‘평가 기준’을 강요하는지도 모른다. 청년 세대들의 좌절은 기득권에 유리한 시스템 때문이고 툭하면 나오는 ‘MZ 세대론’은 편향이 포함된 ‘루키 헤이징’일지도 모른다. 평가 시스템을 바꾸면, 그들의 실력을 당해낼 수 없는 86세대와 X세대의 공포가 반영된, 요즘 말로 ‘억까’. 출신과 연줄과 간판을 지우고 ABS로 승부하면 백전백패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엉뚱하게 ‘귀에 꽂은 에어팟’을 향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야구를 보면서 들고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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