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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형 아파트'서 택배차량 사망 사고
지하주차장 2.7m로 높여도 진입 못해
"주차장 쓰게 기준 바꿔야" 이구동성
1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차량이 출입이 금지된 지상 단지로 이동하고 있다. 오세운 기자


최근 세종시의 한 신축 '공원형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이가 택배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원형 아파트는 지상 주차를 금지하는 거주 형태인데, 당시 택배차는 지하주차장이 아닌 지상 출입을 막아둔 구조물을 치우고 단지 안으로 진입했다. 사고 내용만 보면 규정을 위반한 택배기사의 과실로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구조적 결함이 숨어 있다. 차량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입구 높이가 낮아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지상 운행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지하주차장 높이 기준 바꾸면 뭐하나

서울 신축 아파트 내 주차장 입구. 제한 높이는 2.7m로 돼 있지만 진입할 땐 2.6m(왼쪽 사진), 2.3m로 낮아진다. 오세운 기자


한국일보가 1일 사고 아파트와 비슷한 서울 신축 공원형 아파트 10곳을 둘러본 결과, 단지 내 지상으로 운행하는 택배차량은 수시로 발견됐다. 기사들이 시간에 쫓겨 편한 길을 택한 게 아니다. 이유가 있다.

국토교통부는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2019년 1월부터 공원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제한 높이 기준을 2.3m에서 2.7m로 높였다. 지상 진입을 불허한 만큼 택배차량 등이 이용할 수 있게끔 높이 기준을 확대한 것이다.

문제는 개정안이 현장에서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이 정도로는 택배차가 주차장을 드나들기에 턱없이 낮다. 실제 국내 한 대형 택배업체의 표준 차량 높이는 2.67m다. 2.7m 입구 높이와 거의 맞먹지만, 주차장 내 배관시설 등을 고려하면 이용 가능한 통행 높이는 이보다 훨씬 낮은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한 아파트 관리인은 "지하주차장 높이에 걸리는 택배차가 많아 지상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볼라드(자동차 출입 차단봉)를 분리해 임시 출입을 허용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신축 아파트도 사정이 이러니 주차장 높이가 더 낮은 기존 아파트에선 지상 운행 외에 딱히 방법이 없다. 서울 서초구에서 일하는 택배기사 고모(51)씨는 "강남 쪽에서 지하주차장으로 택배차 출입이 가능한 아파트 단지는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상 운행은 위험... 현실 맞게 기준 고쳐야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이 단지는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이 불가능해 정문 인근에 주차를 하고(왼쪽 사진) 손수레를 이용해 배달을 해야 한다. 오세운 기자


그러나 안전, 소음 등을 이유로 택배차 지상 주차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택배기사들의 고충은 커지고 있다. 2018년 무렵 경기 지역 한 아파트 단지에서 크게 논란이 된 '택배 대란' 사태가 대표적이다.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어린 자녀를 기르는 김모(42)씨는 "건축비용 문제 등은 따져봐야겠지만, 아이 안전을 위해 주차장 출입 높이를 높일지언정 차량의 지상 진입은 최소화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발에 택배기사들은 운행 가능한 곳까지만 차량을 세워놓고 손수레로 직접 운반하거나 지상에서 서행 운전하는 방식으로 배송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힘이 배로 들 수밖에 없다. 경기 의왕시 일대에서 배송 업무를 하는 황대원(56)씨는 "지하주차장 출입이 가능한 저상 탑차로 차량을 교체하면 적재량이 줄고, 낮은 자세로 일해야 해 관절에도 무리가 간다"고 토로했다.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 물량을 최대한 많이 실어야 일정 수입을 보장받는데,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지 않고 부담만 지운다는 것이다.

결국 현행 기준을 바꿔 지하주차장 높이를 확대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다.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는 "기사 입장에서도 지하주차장을 활용하면 날씨 영향도 안 받고 배송 동선을 짜기도 좋다"면서 "지금 기준은 택배차량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차장 안전 대책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은 "지하주차장에 택배차가 출입할 수 없으면 구급차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며 "건축 설계 시 현장 상황을 고려해 법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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