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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호 논설위원

권영세·나경원·이철규·안철수 당선자(오른쪽부터) 등 22대 총선 국민의힘 당선자들이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보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국민의힘이 4·10 총선 참패를 잊고 원점으로 돌아가기엔 너무도 충분했다. 덩달아 여의도 정치도 총선 이전의 팍팍한 대결로 회귀했다. 너도나도 ‘총선 민심’을 말하지만 언제 총선의 충격이 있었느냐 싶은 풍경이다. 보수언론조차 과거엔 ‘혁신 쇼라도 하더니’라며 질책하고, “만년 2등의 체질화”라고 탄식도 쏟아내지만 소용이 없다. 집권여당의 기이한 이 평온은 총선의 최대 미스터리가 될 판이다.

역대급 참패를 수습할 비상대책위원회는 당선자보다 많은 낙선자들의 “혁신형” 절규를 뿌리치고 관리형으로 결론내더니, 너도나도 위원장을 고사했다. 전당대회 준비 외에 권한도 없는데 희생할 중진은 드물었다. 돌고 돌아 8년 전 은퇴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책임을 맡았다. 이런 판에 총선 인재영입위원장·공천관리위원이던 ‘핵관 중 핵관’이 원내대표를 하겠다고 나서고, ‘윤심’인가 싶어 모두 꼬리를 내리니 경선이 미뤄지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이 정당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변화에 둔감한 초식공룡”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의 종합판이다.

국민의힘의 이런 뻔뻔함에도 이유는 있다. 심리적·공학적·정치적 요인 몇가지가 이렇게 만들었다. 우선은 ‘책임감의 결여’다. 총선 패배 책임이 당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실패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실패이지 국민의힘의 실패는 아니라는 생각이 집단적 무의식 속에 가득하다. ‘대파 875원 파동’ 등 재를 뿌린 대통령실을 향해 눈을 흘기고, 뒤늦게 “여당이 심판론이 말이 되느냐”는 한 위원장 탓은 그래서 가능하다. 친윤과 친한으로 패를 나눠 험구는 쏟아내도 일부 수도권 낙선자들을 빼고 성찰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이런 의식 밑바닥에는 윤 대통령도, 한 위원장도 국민의힘이란 플랫폼에 이식된 ‘타인’일 뿐 당 본류로 생각지는 않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런 심리적 구도에선 당은 윤·한에게 권한을 주고 지원한 주체이니 평가는 해도 평가받을 대상은 아니게 된다.

두번째는 ‘정치 감각의 부재’다. 총선 참패를 당 기조나 소위 국민의힘식 보수의 실패로 보지 않는다. 단지 조금 소통에 서툴렀을 뿐이다. 그것도 어수룩하고 고집스러운 정부가 말이다. 그러니 바꿀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고물가·고금리의 민생고에도 균형재정을 읊조리며 감세를 감행하는 건 이 정당의 오랜 신조이고, 낡은 성장론으로 개발만 남발하는 것은 ‘박정희 신화’ 이후 전통이 됐다. 원칙 있는 남북관계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위대한 대한민국’을 위해 역사를 뒤집는 건 당 이념이 됐다. 영남으로 쪼그라든 당선자들이 지역에서 듣는 핀잔이래야 “대통령이 왜 그리 옹고집이냐”는 정도고, 주변 지인들이 감세·성장의 직간접적 수혜자들이니 윤 대통령처럼 “국정 방향은 옳다”고 강변할밖에. 서민의 고통이 체감되지 않으니 수도권 낙선자들 말이 귀에 들어올 리도 없다.

마지막은 공학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터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 대선은 이길 수 있고, 이기면 된다고 손쉽게 생각한다. 지난 대선이 그랬듯 ‘프로젝트’ 하나 잘 띄우면 된다는 ‘떴다방 정당’의 체질화다. 총선을 앞두고 선선히 한 위원장에게 전권을 맡기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언제든 ‘불변의 30%’라는 믿는 언덕이 있고, 어차피 대선은 일대일 양당 싸움이니 더불어민주당과만 잘 싸우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올라탈 조건은 오직 팬덤이다. 행동력 있는 지지층에 어필하고 그들의 인기를 얻는 게 중요하다. ‘새 보수’건 ‘따뜻한 보수’건 굳이 새로운 가치나 비전을 만들고 미리 사람을 키울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부 노선 분란만 만들까 경계한다. 국민의힘 정치가 쉽게 유튜버 등 ‘시장논객’들에게 포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변화 없는 국민의힘이 다시 선택받기는 정말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는 걸 그들만 모른다. 한국 사회 인구 구성은 확연히 변했다. 그들의 화양연화를 만든 산업화 세대는 점점 퇴장하고, 이제 민주화 세대가 인구의 주축이다. 혹 어쩌다 민주당의 엄청난 실패 덕에 ‘프로젝트 대선’이 성공한다 해도 잘해야 2년 재미 보다 남은 3년 역사와 대화하는 권력의 운명이 되기 쉽다.

보수는 지키는 것이라고 하지만, 보수주의를 정립한 에드먼드 버크의 충고처럼 신중하게 필요한 혁신을 할 때야 지키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 국민의힘은 죽는 줄 모르고 그저 안주하는 ‘초식공룡’일 뿐이다. 가치와 비전은 없는, 권력만이 목적인 붕당의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걸 “구리다”고 한다.

김광호 논설위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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