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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고(故) 전영진씨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연합뉴스

첫 직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괴롭힘에 시달리던 스물다섯 살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두고 재판부마저 “직장 내 괴롭힘 내지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1단독 장태영 판사는 폭행 등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A씨(41)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장 판사는 “피고인은 직장 상사로서 피해자를 전담해 업무를 가르치는 역할 등을 수행하면서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폭행을 가하고 약 2개월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폭언, 협박을 반복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해자는 거의 매일 피고인의 극심한 폭언과 압박에 시달렸다”며 “피고인의 각 범행 직후 불과 며칠 만에 피해자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피고인의 각 범행이 피해자의 사망에 상당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5세 사회 초년생이었던 전영진씨는 매일 직장 상사 A씨의 폭언과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2021년 8월 입사 이후 사망 전날까지 직장에서 받은 고통을 가족에게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유서 한 장 없이 떠난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형 영호씨가 ‘혹시 남겨놓은 음성메시지라도 있을까’ 싶어 열어본 휴대전화에 영진씨 죽음의 이유들이 녹음돼 있었다.

영진씨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통화 녹음은 모두 86건이었다. 말 첫머리부터 끝머리까지 온통 욕설로 가득한 A씨의 폭언이 지난해 3월 21일부터 5월 1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다시피 이어졌다. 인격모독적인 발언들 속에서는 폭행 정황도 드러나 있었다. 심지어 A씨의 입에는 영진씨 부모까지 오르내렸다.

“그리고 ○○○아. 내가 너보고 알아서 하라 그랬지? 그런데 왜 ○○○아. 너는 그 차 나갈 때까지 고통받을 줄 알아. 이 ○○○아.”(지난해 3월 21일)
“닭대가리 같은 ○○ 진짜 확 죽여벌라. 내일 아침부터 함 맞아보자. 이 거지 같은 ○○아.”(3월 29일)
“죄송하면 다야 이 ○○○아.”(3월 30일)
“맨날 맞고 시작할래 아침부터?”(4월 4일)
“개념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4월 10일)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열두 대야.”(4월 19일)

영진씨는 사망 닷새 전 “너 지금 내가 ○○ 열 받는 거 지금 겨우겨우 꾹꾹 참고 있는데 진짜 눈 돌아가면 다, 니네 아비어미고 다 쫓아가 죽일 거야. 내일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아, 알았어?”에 이어 나흘 전 “너 전화 한 번만 더 하면 죽일 거야”라는 욕설을 들어야 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영진씨가 다녔던 강원도 속초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는 직원이 5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다. 영진씨에게는 첫 직장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약 20년 경력의 A씨는 첫 직장 상사였다.

입사 시기를 고려하면 괴롭힘이 더 있었으리라 추정됐지만 통화 녹음과 CCTV 일부를 토대로 밝혀낼 수 있었던 범행은 주먹으로 머리를 때린 행위 4회, 협박 행위 16회, 정보통신망법 위반 행위 86회뿐이었다. 이는 공소장에 담긴 범죄사실일 뿐 영진씨와 A씨 간 2개월 동안 이뤄진 통화 700여건 중 공소장에 담기지 않은 통화 역시 모욕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영진씨 가족을 도운 박혜영 노무사는 “현실에서는 무슨 일을 더 당했는지 몰라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A씨는 법정에서 영진씨와 유족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만성 신장병으로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온 사정 등을 들어 선처를 호소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고(故) 전영진씨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연합뉴스

장 판사는 “도저히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 두려움, 스트레스는 가늠조차 어렵다”며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고 질타했다.

‘훈계와 지도 명목’이라는 A씨 측 주장에 대해선 “피고인이 직장 내에서 피해자에게 가한 폭행과 폭언은 피해자의 기본적 인권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CCTV 영상 속 피해자의 모습은 피고인 앞에서 매우 위축돼 고개마저 들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장 판사는 “사랑하는 막내아들이자 동생인 피해자를 잃은 유족들 역시 커다란 슬픔과 비통함에 빠져 있다. 피고인에 대해 그 책임과 비난 가능성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A씨의 항소로 오는 30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다.

유족은 박 노무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산업재해 신청을 준비 중이다. 유족은 또 A씨와 회사 대표를 상대로 최근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형 영호씨는 “징역 2년6개월은 솔직히 적다. 사람이 죽었는데, 합당한 죗값은 무기징역이다. (가능하면)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가해자는 다신 사회에 나오면 안 된다. 더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생기고 처벌도 강화되길 바란다”고 성토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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