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한겨레 자료 사진


이춘재ㅣ논설위원

이원석 검찰총장이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사법 시스템을 흔들지 말라”라고 경고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제기한 ‘검찰 술자리 회유’ 의혹을 일축하면서다. 정확히는 이 전 부지사에게 한 말이지만, “공당에서 이 부지사의 진술만 믿고 이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뒷말을 붙여 민주당을 향한 경고임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총장이 야당을 향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역대 검찰총장들은 혹시라도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휘말릴까 봐 자제했다. 수사를 받고 있는 야당 인사와 이러쿵저러쿵 말을 섞는 것 자체가 검찰총장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드물게 ‘대검 중수부 폐지’(송광수)나 ‘검찰총장 징계’ 국면(윤석열) 때 검찰총장이 정치권을 향해 메시지를 냈지만, 그건 집권여당에 한 것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3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월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부지사의 폭로가 사법 시스템을 흔든다는 주장도 너무 나갔다. 궁지에 몰린 피고인이 자기방어를 위해 무슨 말인들 못 할까. 검찰이 판단해 허무맹랑한 주장이면, 수사팀이나 해당 검찰청이 대응하면 될 일이다. 재판에서 공소사실이 다 인정되면 저절로 수그러들 텐데 굳이 검찰총장까지 나서야 했을까. 일개 피고인의 의혹 제기에 흔들릴 정도로 ‘약해 빠진’ 검사들도 아니지 않나.

정작 사법 시스템을 흔들고 있는 건 오히려 검찰이다. 사법 시스템은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한 사건을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재판해서 판결한 뒤 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법원이 한다. 그런데 지금 검찰은 법원의 판결, 그것도 최고 법원인 대법원 판결을 버젓이 무시한다. 검찰은 ‘윤석열 대선 후보 검증 보도’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 범위를 벗어난 기자의 휴대전화 정보까지 통째로 저장해온 관행이 들통나 ‘위법 증거수집’이라는 지적을 받고서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우긴다. 여러 대법 판례에서 수사와 무관한 휴대전화 정보를 폐기하지 않고 대검 서버 ‘디넷’(D-NET)에 저장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는데, “대검 예규에 따라 적법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책임자는 주제넘게 이런 훈계까지 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포렌식도 수사 절차 규정에 따라 엄격히 진행하고 있다. 그 절차를 직접 당해보지 않은 분들이 오해하지 않나 싶다.” “제기되는 원본 문제도 향후 공판에 있을 검증을 위한 절차이지, 보관해서 우리가 다른 사건(별건)에 활용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선 절대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한마디로 ‘검찰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라는 거다.

‘별건 수사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이 수사 책임자의 말은 얼마 안 가 거짓으로 드러났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4월16일, 검찰이 2018년 한 지방검찰청 직원을 디넷에 저장해놓은 휴대전화 정보를 이용해 ‘별건’으로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범죄사실과 무관한 정보를 삭제·폐기하지 않고 디넷에 보관하는 것도 불법이고, 이를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래도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디넷에 보관된 (휴대전화) 전부 이미지는 증거의 무결성, 동일성, 진정성 등 증거능력 입증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간다’는 식이다. 너무 오만하지 않은가.

검찰의 오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 아래 두명의 전직 대통령에 이어 대법원장까지 구속한 경험에서 나오는 ‘배짱’이다. 사법농단 수사 당시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검찰청 조사실 철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판사라고 대수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법부의 ‘바닥’을 들여다본 ‘윤석열 사단’의 눈에 대법 판결쯤은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법원이 여러 차례 불법이라고 판결한 것을 ‘우리가 보기엔 적법한데?’라며 무시할 수 있을까.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인 이 나라에서 검찰은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한다. 검찰은 자기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여준 대통령을 제외하곤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 자신의 ‘보스’에게 비판적인 언론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런 검찰을 3년이나 더 참아야 하나. 정말 ‘3년은 너무 길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2904 우원식 “국회의장, 단순 사회자 아냐…다른 국회 될 것” 랭크뉴스 2024.05.16
12903 [좌담] “언어 장벽보다 불확실한 미래가 문제”…외국인 과학자 4人에게 한국 과학을 묻다 랭크뉴스 2024.05.16
12902 민주당,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에 우원식 선출, 추미애 꺾고 이변 랭크뉴스 2024.05.16
12901 [영상] 모하비 사막에서 한 달 동안 싸웠다 랭크뉴스 2024.05.16
12900 “대리출석 요청 녹취 있다”…운전자 바꿔치기 소속사 개입 정황 랭크뉴스 2024.05.16
12899 “딸에게 별일 없길 바란다면”…학부모가 교사에게 협박 편지를? [지금뉴스] 랭크뉴스 2024.05.16
12898 인천 교회서 몸에 멍든 여고생 숨져…경찰, 학대 혐의 신도 체포 랭크뉴스 2024.05.16
12897 우원식, ‘명심’ 추미애 꺾었다…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랭크뉴스 2024.05.16
12896 “15층서 사람 떨어지려 한다”…60대 치매 노인 구조 랭크뉴스 2024.05.16
12895 [단독] 이틀 전 서강대교서 투신 시도 여성, 또…경찰에 극적 구조 랭크뉴스 2024.05.16
12894 "덜렁덜렁대는 건 정부 아닌가" 국토장관 '덜렁덜렁' 발언 역풍 랭크뉴스 2024.05.16
12893 尹 만난 조국 "과장된 억지 미소 짓더라…감정 묘했을 것" 랭크뉴스 2024.05.16
12892 [단독] “간호사 사생활 불법촬영”…증거 찍으려하자 휴대전화 망가뜨린 수의사 체포 랭크뉴스 2024.05.16
12891 이재명, '우원식 승리'에 "이게 당심"…당 대표 연임론엔 "아직 생각할 때 아냐" 랭크뉴스 2024.05.16
12890 우원식, 추미애 꺾고 22대 국회 상반기 국회의장 후보 랭크뉴스 2024.05.16
12889 '명심'은 추미애라더니…국회의장 후보 우원식 '이변' 랭크뉴스 2024.05.16
12888 국내 코인 투자자 645만명…1억 이상 보유자는 8만명 랭크뉴스 2024.05.16
12887 "어디 투자할까" 워런 버핏 몰래 사들인 주식 '이곳'…67억달러 사들여 랭크뉴스 2024.05.16
12886 SK이노베이션 "SKIET 지분 일부 매각 등 다양한 방안 검토" 랭크뉴스 2024.05.16
12885 국내선 아직인데…'드럼통 살인' 용의자 실명·얼굴 공개한 태국 랭크뉴스 202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