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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삶은 지옥 이상이고, 가족들하고 전부 다 흩어지는 게 제일 (마음이) 아프고…또 통증이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는 게…"

-허운학 / 희귀난치병 복합부위통증증후군 1형(CRPS) 산재 노동자

60대 남성 허운학 씨는 왼손 검지가 없습니다. 2017년 울산 동구의 한 컨테이너 업체에서 페인트 작업을 위해 작업용 공기총을 쓰던 중 실수로 방아쇠를 왼쪽 손에 당겨 상처를 입었습니다. 4달 동안 요양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신경통은 계속됐고, 다음 해 주치의로부터 "손가락 절단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산업재해를 심사하는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회는 "절단을 통해 상태가 나아질 거라는 소견이 불명확하다"며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계속됐고 허 씨는 사고 3년 뒤 결국 손가락을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또 3년 뒤, 난치희귀병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 1형, CRPS 판정을 받았습니다.

올해도 허 씨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재 승인을 위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7년 사고 이후, 7년의 세월은 허씨에게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아프다 생각하면 아프게 느껴져"…무책임한 말을 믿었다


사고 다음 해, 허씨는 통증이 심해지자 손가락 절단을 위한 산재를 신청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회는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회는 "아프다 생각하면 아프게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 말고 조금만 더 견뎌봐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허 씨는 근로복지공단 의사회 측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반복됐습니다. 허 씨는 왜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지 직접 울산·부산 지역 대형병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기어코 부산의 한 병원에서 신경종 의심 진단을 받아 내고 신경 절제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추가 승인이 났고, 손가락을 절단했습니다. 사고 발생 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제는 괜찮아졌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팔은 저리고 사고 부위 주변 손가락을 구부릴 수도 없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통에 다시 전국의 병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 허씨의 병명을 찾았습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1형, 이른바 'CRPS'라는 희귀 난치병을 판정받았습니다. 'CRPS'. 바람만 불어도 아파서 '지옥의 통증'을 느낀다는 난치병입니다.

허 씨는 "초기에만 치료를 하면 완치율이 높다는데, 그 시기를 놓쳐버리고 지금까지 와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손가락 절단 거부' 소견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병원은 '희귀난치병', 근로복지공단은 '진단기준 미달'…7년보다 길어질 허 씨의 고통


"의사마다 '의학적인 소견'이라고 하잖아요. 환자를 보는 관점이 그렇다고밖에 사실 설명을 못 드리겠어요…또 한편으로는 CRPS가 (자문의사회) 의사들도 많이 다뤄보지 않은 상병일수도 있어요…"

-근로복지공단 관계자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병원 측 말을 듣고 허 씨는 소견서를 가지고 다시 근로복지공단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회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회는 "증상 중 하나인 다한증, 운동 능력 변화 등이 없다"며 CRPS 진단기준 미달 판정을 내렸습니다. 병원에서 내린 소견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겁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CRPS가 자문의사회에서 인정이 안 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다"고 말합니다. CRPS는 질병으로 인정할 수 있는 수치적 기준이 모호합니다. 증상 기준이 '피부색 변화', '운동 능력 변화' 등으로 의사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며, 이때는 다른 자문의사회가 심사하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허 씨는 "손가락 절단을 하지 말라"는 말을 믿었다가 결국 손가락을 절단해야 했고, "아프다 생각 말고 조금만 참으라"는 말을 믿고 기다렸다가 결국 희귀난치병을 얻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또 7년간의 투병 끝에 가족도 떠나고, 경제적 능력도 완전히 상실했다고 호소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서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습니다마는, 가족들과의 거리가 멀어진 게 제일 가슴 아파요…전에는 가족들끼리 같이 낚시도 가고, 이렇게 시간을 함께할 때가 있었는데, 이 사고 이후로는 전혀 그런 게 없어졌습니다…(생애) 남아 있는 시간도 길지 않다는 걸 한 번씩 생각하게 될 때마다 좀 억울하다, 원통하다…"

-허운학 / 희귀난치병 복합부위통증증후군 1형(CRPS) 산재 노동자

허 씨는 지난 3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 재심사를 청구했습니다. 어쩌면 '지옥의 7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지만, 재심사마저 기각된다면 행정 소송도 생각하겠다며 또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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