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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대 뒤떨어진 ‘근기법 적용 제외’
연차 보장하는 옷가게 사장님 “입소문”
반대편에는···제도 악용 ‘가짜 5인 미만’
“시민권 잃은 이들의 시민권 회복 필요”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물건을 나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서울 동대문 인근 한 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A씨(54)는 직원들에게 연차휴가와 4대보험을 보장해준다. 그 이유로 A씨는 상가에서 ‘특별한 사장’이 됐다. A씨가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 대부분의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유급휴가 부여 의무도 예외다. 4대보험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지만, 법의 관리감독이 약한 작은 사업장에서는 대체로 지켜지지 않는다. 5인 미만 소규모 의류도매상이 밀집한 동대문에서 A씨 같은 사장은 드물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니까요.” A씨가 말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인권과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고 했다. “우리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일하는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에게서 A씨는 두 자녀의 모습을 읽는다. “내가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게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 아닐까 했어요.”

단순히 도의적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다. A씨는 “직원들이 연차를 쓰면 내가 나와서 일을 보면 되고, 4대보험도 소규모 사업장에는 정부 지원이 나와서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뺏는다고 사업주가 이득을 보는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가 볼 때 소규모 업체 사장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임대료와 카드 수수료, 부가세, 소득세 공제 문제 등이다.

“5인 미만 사업주도 영업을 그만두면 바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돼요. 여기 상가도 마찬가지예요. 저만 해도 20년 일했는데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뭘 하겠어요.” A씨가 말했다. 그는 큰 기업에 다니다가 육아 문제로 퇴직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3월26일 서울 동대문 인근 한 의류상가에서 A씨(54)가 가게에 진열된 옷들을 살피고 있다. 조해람 기자


“같이 협력해서 살아가는 동업자잖아요. 여기 사장님들도 남의 권리 빼앗아서 돈 버는 것 원하는 분 없고 실제로 이득 보는 것도 없어요. 왜 그들의 권리를 들어주면 우리 이익이 없어지는 것처럼 편가르기 하는지 모르겠어요.”

A씨는 연차를 쓰는 직원들에게 “누가 ‘왜 쉬냐’고 물어보면 ‘연차 썼다’고 하라”고 말한다. 상가에서도 젊은 사장들을 중심으로 휴가와 4대보험을 보장하는 가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시대 뒤떨어진 ‘적용 제외’…두 가지 풍경

A씨처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챙겨주는 사업주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적으로 노동권 인식이 높아지면서, 노동시장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미적용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차휴가·유급공휴일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도 연차와 유급공휴일을 보장하는 5인 미만 사업장 공고를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직원 3명인 한 전자담배업체는 연차, 정기휴가, 공휴일 휴무 등을 근무조건으로 걸었다. 사원이 4명인 한 컴퓨터·하드웨어업체는 ‘리프레시 휴가’와 경조휴가, 공휴일 휴무 등을 제시했다.

A씨도 ‘유급휴가·4대보험 보장’으로 구인시장에서 더 유리해진 것을 느낀다. 특히 젊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있다. “많이 도움 되죠. 같은 조건이라면 저를 선택하지 않겠어요? 퇴사할 때 고맙다고 기뻐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도 기쁘고요.”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물건을 나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문제는 법 미적용을 악용하려고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사업주도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외주화(아웃소싱)를 통해 5인 이상인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만드는 ‘사업장 쪼개기’가 대표적이다.

하은성 샛별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우연히 한 컨설팅업체의 인사노무컨설팅 광고를 보고 황당했다. ‘상시 직원 5인 미만으로 노동법 위반을 벗어나자’는 제목이 달린 전단에는 “5인 이상일 경우 주 52시간 적용, 시간외근무수당 등이 걱정거리”라며 “아웃소싱으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 노무사는 “노동법 적용이 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이 그만큼 매력적이니 이 같은 광고까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과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맺어 상시근로자를 5인 미만으로 낮추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노동계는 이런 계약을 개인사업자의 사업소득세율 3.3%를 빗대 ‘가짜 3.3’ 또는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2년 이 같은 방식의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은 12만4815곳에 달했다. 2018년 기준 6만6850곳에서 2021년 10만3502곳으로 매년 늘고 있다.

사장은 ‘꼼수가 이득’…노동자만 운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부당해고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꼼수 계약’ 탓에 부당해고에 맞서기도 쉽지 않다. 수도권의 한 방송외주제작사에서 일했던 B씨(30대)가 그 사례다. 연차와 4대보험은 없었다. 오후 10시를 넘기는 야근과 주말근무도 많았는데 연장·야간·휴일수당도 받지 못했다. B씨는 입사 두 달 만에 해고를 당했다. 이해할 수 없는 노동환경 등에 몇 차례 의견을 내자 선임은 “대화가 안 된다”며 해고 통보를 했다.

B씨는 해고된 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준비할 때 회사가 ‘가짜 5인 미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때에 따라 최대 15명 정도가 일하고 있었는데, 서류를 떼어 보니 상시근로자가 5명 아래였다. B씨를 포함한 10여명이 ‘위장 프리랜서’였던 것이다.

B씨가 부당해고와 연장·야간수당 체불 문제를 다투려면 2개의 벽을 넘어야 한다. 우선 해당 사업장이 위장 계약을 통한 ‘가짜 5인 미만’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사업장이 5인 이상이어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B씨는 또 프리랜서 계약서를 쓴 자신이 사실은 지시·통제를 받으면서 일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것도 입증해야 한다.



B씨는 “근무환경이나 조직문화가 1970~1980년대식 문화 같다. 해당 제작사의 메인작가는 착취 사슬의 감독자나 다름없었다”며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자가 아무 권리도 인정받지 못한다. 대부분 사회초년생인 어린 작가들을 데려다가 ‘당연한 관행’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이 같은 ‘노동자 오분류’를 일종의 탈세로 보고 국세청이 엄격하게 관리한다. 고용주가 의도적으로 노동자를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면 노동자 1인당 최대 1만달러의 벌금이나 1년 이하 징역까지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제대로 된 모니터링과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 노무사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적발돼도 처벌되는 게 아니라 원래 줘야 하는 수당 등만 주면 되니까 위장을 안 하는 게 이상한 것”이라고 했다.

“노동법 적용은 잃어버린 시민권 회복”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2년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 방안’ 보고서에서 “사업장 규모에 따라 획일적으로 근로기준법의 적용범위를 설정하고 있는 현행 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적용범위 확대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국회의 입법 노력은 더뎠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지불능력’이 주된 반대 논리였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근로기준법의 5인 미만 사업장 배제’를 합법으로 판단하면서 사업주의 지불능력, 근로감독 행정력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를 두고 ‘모든 5인 미만 사업장이 지불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냐’는 반론도 나온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수 상위 3개 업종에는 ‘의원(일반의원·치과·한의원)’이 있고 법률사무소·회계법인도 5인 미만인 경우가 많은데, 사업장 규모로 지불능력을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냐는 지적이다.

낮은 지불능력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21년 통계청의 ‘소상공인 실태조사’를 보면, 소상공인들은 경영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 ‘경쟁심화(42.6%)’ ‘원재료비(39.6%)’ ‘상권쇠퇴(32.0%)’ ‘임차료(13.5%)’ 등을 꼽았다. ‘최저임금’은 10.3%, ‘인력관리’는 8.2%에 그쳤다.

최근 국회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용하되 형사처벌은 일정 기간 유예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회적 대화를 거쳐 단계적 적용을 추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노동자 대다수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요구한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2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인 87.7%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돼야 한다’고 답했다. 단계적 적용 시 우선 적용 조항(복수응답)으로는 ‘연장·야간·휴일수당(34.8%)’ ‘주 최대 52시간제(31.9%)’ ‘공휴일 유급휴일(27.7%)’ ‘휴업수당(26.5%)’ ‘해고 등의 제한(26.1%)’ ‘연차 유급휴가(23.1%)’ 등이 꼽혔다.

노동계 전문가들도 전면적이든 단계적이든 법 적용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하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 문제가 복합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법 전면적용이 우선이지만,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당장 전면적용이 어렵다면 휴가, 명확한 임금 보상체계, 상층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육·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같은 인격권,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 같은 생존권, 휴식권 등이 필요하다”며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적용은 국가가 시민권을 박탈한 노동자들의 시민권 회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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