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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정우 데자뷰
전통 우물마루 돌다리 양식 고양 강매석교
5월 다리 앞 들녘 유채꽃에 뒤덮일 예정
강매석교 상판에 잘 다듬어진 교판석이 두 줄로 놓여 있다.

백년이 넘은 돌다리 ‘강매석교’ 위를 휴일 아침 시민들이 건넌다. 아침잠이 옅어진 장년의 부부가 뒷짐을 진 채 두런거리며 건너고, 날렵한 운동복 차림의 청년이 가쁜 숨소리와 함께 발자국을 남긴다. 가장 흔하게 지나는 이들은 헬멧을 쓴 자전거족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강고산마을에 자리한 강매석교는 북한산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흐르는 창릉천을 넘는 다리다. 강고산이란 이름은 한강에 제방을 쌓기 전 이 마을 앞까지 한강 물이 들어와 붙여졌다. 지금도 밀물 때는 한강 물이 들어온다.

마을 앞 창릉천 갈대섬에 있던 나루의 이름은 해포였다. 이곳에서 한강의 새우젓 배들이 고양 지역에 판매할 새우젓을 내렸다. 나루터에서 강고산마을로 건너가려고 해포교란 나무다리가 놓였다. 1755년 영조 때 발간된 <고양군지>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정영돈씨가 자전거를 타고 강매석교를 건너고 있다. 한겨레21

이 자리에 돌다리로 다시 지어진 강매석교는 다리 중간 부분에 ‘강매리교 경신신조’라는 음각 기록이 남아 있어, 경신년인 1920년대에 신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네모난 돌기둥 24개로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두 줄로 교판석을 깐 모양이다.

다리 길이는 18m, 폭 3.6m, 높이 2.7m다. 가운데 부분을 양 끝보다 높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둥근 모습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적 다리 형태인 우물마루 돌다리 양식이다.

고양의 일산, 지도, 송포 등 한강 연안의 서부 지역 주민들은 이 다리를 통해 서울을 오갔다. 각종 농산물과 땔감 등 생필품을 고양 현천동, 수색, 모래내를 거쳐 서울에 내다 팔았다.

한강에 제방이 쌓여 둔치가 생기고 강매세월교(세월교는 둥근 관을 통해 하천 물이 흐르고 그 위로 사람과 차량이 지나도록 만든 다리를 일컫는다) 등 현대식 다리가 놓이면서 강매석교는 교통로 구실보단 문화재 가치가 돋보인다.

승용차로 자신의 접이식 자전거를 옮겨놓고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기도 하는 회사원 정영돈(48)씨는 2024년 4월21일 강매석교를 찾았다. 고양시가 조성한 고양누리길 14코스 ‘바람누리길’ 구간인 이곳에서 그는 매주 두 바퀴를 굴리며 바람을 맞는다. 황철쭉 등 봄꽃이 초록 사이를 물들인 요즘은 페달이 더욱 가볍다.

정씨는 “지나다니면서도 석교의 존재를 몰랐는데, 경기도 유형문화재가 됐단 뉴스를 보고 알았다. 우리 조상들이 한양을 가느라 힘들게 걸어 건넜을 다리를 미니벨로로 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교한 다리의 모양새에 담긴 지혜에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현대식으로 지은 강매세월교 위로 시민들이 달리거나 자전거를 탄 채 건너고 있다. 위쪽에 강매석교가 보인다. 한겨레21

이제 곧 5월, 강매석교 앞 들녘은 노란 유채꽃이 뒤덮는다. 고양시를 대표하는 ‘창릉천 유채꽃축제’가 5월 중순 강매석교 주변에서 열린다. 강고산마을 주민들은 장마철에 물이 불어 강매석교를 건너지 못하는 이들이 있으면 늦은 밤에도 몰려나와 도왔을 정도로 인심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유채꽃축제를 찾는 상춘객들은 백년 전 돌다리와 함께 백년 묵은 마을 인심도 느껴보시라. 두드려보지 않아도 알아챌 단단함과 푸근함을 실감할 수 있을 터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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