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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로 듣는 ‘애도’]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김우진(가명·오른쪽)씨를 만났다. 그는 9년 전 파트너를 자살로 잃었다. 우진씨의 실명과 직업, 나이 같은 신원 정보는 최대한 비공개로 한다. 정다빈 기자




‘애도를 박탈당한 사람들.’

퀴어(성소수자) 자살 사별자가 그렇다. 고인과 가장 가까웠고, 그를 가장 사랑했는데도 파트너가 떠나면 애도를 ‘허가’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김우진(가명)씨는 9년 전 동성 연인을 자살로 잃었다.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그게 연인에게 한 우진씨의 마지막 말. 짜파게티를 사러 나간 연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강 어느 다리 위에서 그의 신발이 발견됐다.

그가 살아있을 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였는데, 그 사람이 죽고 나니 세상은 그걸 알아주지 않았다. 경찰은 “두 사람이 그럼 친구냐”고 물었고, 우진씨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애인의 가족은 심지어 ‘죄인’ 취급을 했다. 두 사람의 내밀한 대화가 축적된 카카오톡 메시지는 가족의 손에 쥐어졌다.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 배신감, 고통이 우진씨를 덮쳤다. 거기다 수치심과 모멸감, 공포까지 감내해야 했다.

인터뷰 날, 우진씨는 두툼한 노트 한 권과 앨범을 품에 안고 나왔다. 두 사람이 살던 집에서 도망치듯 나올 때 간신히 챙긴 것들이다. 일기장에는 죽은 연인의 영혼이, 앨범엔 두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우진씨는 말했다. “죽음에 대해, 자살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그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게다가 이 높은 자살률 중 큰 비중을 성소수자가 차지하고 있을 거고요.”

우진씨의 삶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기를 쓰고 살아내고 있다.

“그 친구의 죽음이 저에게 준 의미는 ‘나는 죽지 않아야겠다’예요. 저도 그 이후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남은 사람들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게 되니까. 그리고 (살아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귀여웠는지요. 그 사람이 그저 ‘자살했다’는 의미로만 기억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땠는지는 저밖에 모르잖아요. 제가 없어지면 그런 일들도 다 사라질 것만 같아요. 그래서 죽지 말자고 계속 다짐을 해요, 힘들지만.”

우진씨에게 자신만이 아는 연인의 면모를 담아 부고를 써달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 다시 태어나면 나무나 돌고래가 되고 싶어 하던 사람, 삼각형과 동그라미 낙서를 많이 하던 사람, 정리를 매우 잘했던 사람, 섬세하고 다정했던 사람, 잘생기고 손이 굉장히 따뜻했던 사람, 미숙한 부분도 많았지만 그만큼 재능과 가능성이 있었던 사람, 삶을 힘들어했지만 그만큼 삶에 진지했고 열성적이었던 사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노력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원하던 대로 언제나 자유롭고 평안할 것이다.’

우진씨는 자살 사별자들, 그리고 자신과 같은 퀴어 자살 사별자들에게 말한다. “너무 힘들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살다 보면 완전한 순간, 평온한 순간,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이겨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도 제 인생은 너무나 심란하고 고통스러워요. 그래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그걸 말해주고 싶어요.”

편집자주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살 사별의 아픔이 비단 가족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자살은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고인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이 맴돕니다. 죄책감이나 원망이 들어차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애도’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올해 자살 사별자들의 그 마음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입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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