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거꾸로 가는 과거사 청산
진도사건 진실규명 미룬 근거된
진도경찰서, 처형 19년 뒤 작성
경찰서 지침 따라 지서가 기록 작성
기록 전문가 “경찰 주관적 생각일 뿐”
1969년 진도경찰서 기록을 근거로 진실규명 보류 판정을 받은 진도사건 학살 피해자 허훈옥씨의 모습. 1950년 10월20일 진도군 의신면 골짜기 밭에서 학살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다. 가족 허경옥씨 제공.


‘진도 사건(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이란 진도군 의신면·임회면에 거주하던 이들이 한국전쟁 중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 행위를 했다는 이유 등으로 1950년 10월 경찰 수복 뒤, 1951년 1월까지 거주지 일대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암살대원, 정보원, 살해음모자, 암살대 연락책, 암살대 정보원….

진도경찰서가 1969년 작성한 요시찰인 감시 기록인 ‘대공’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한국전쟁기 경찰에 의해 학살된 이들의 ‘사살 개요’란에 적혀 있다. 리 인위장(리 인민위원장), 군 인위(군 인민위원회) 직원, 자위대 감찰, 자위대원 등도 등장한다. 심지어는 스파이라는 뜻의 ‘오열분자’도 나온다.

1950년 희생자들을 사살한 가해자인 경찰이 사건 발생 19년 뒤 작성한 이 자료를 보면, 희생자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인민군 점령 시기에 적대세력에 가담하여 부역행위를 했다. 엄마 등에 업혀 있다 함께 죽은 갓난아이한테만 부역한 직책을 적어놓지 않았다.

지난 3월12일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을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 올린 1소위원회 위원장 이옥남 상임위원은 ‘암살대원’으로 적힌 4명에 대해서만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고, 현재까지 이를 반박할 기록이 없다”면서 ‘진실규명(피해자 인정) 불능’ 의견을 밝혔다. 살해음모자, 암살대 정보원, 오열분자 등은 모호해서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지만, ‘암살대원’은 구체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경찰 기록에는 ‘암살대원’ 네 글자뿐이고 근거가 없다. 실제로 누구를 암살했는지는 물론이고 수사·재판 자료도 없다.

이 기록은 ‘사살자 가족을 철저히 감시하라’는 상부 지침에 따라 가해자인 경찰이 만든 자료다. 진도경찰서는 1969년 12월8일 ‘사살자 가족 동향 감시 철저’ 제하의 공문을 각 지서에 배포했다. “첩보에 의하면 6·25 당시 사살자의 유자녀들이 점점 성장함에 따라 사상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경찰관 및 우익 진영에 보복심을 품고 있는 경향이라는바, 이들에 대한 동향을 철저 감시할 것이며, 불순분자의 접선 여부를 수시 확인할 것, 다음의 양식에 의거 사살자 가족의 열람표를 만들어 비치하고 보고할 것.”

이에 따라 만길리가 속한 진도경찰서 산하 의신지서장은 157명, 임회지서장은 136명 등 총 326명에 관해 가족 열람표를 만들어 보고했다. 지난 3월12일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결정이 났거나 보류된 진도 희생자 41명도 326명 명단에 포함돼 있다. 전체 326명 중 ‘암살대원’으로 기재된 사람은 40명이다. 이 중 4명이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의 희생자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2023년 10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기록에 관해 “공적인 자료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어야 하냐. 당시 만든 공적 자료는 기본적으로 신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공’에 관해 기록학 전문가인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는 “기록의 유형으로 보자면 탄압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과거 사실을 규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희생자 가족들을 감시하고 탄압하기 위해 작성한 기록이라 현저히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이 기록을 입증할 수 있는 다른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저 경찰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인데 그것을 국가가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사실로 확정 짓는다면 난센스”라고 말했다.

‘신원기록 심사보고’ ‘대공’ 등 경찰 기록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의 유가족을 사찰한 자료로 1960년, 1979년, 1981년 등 여러 차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새로 만들거나 통합·정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자료는 1기 진실화해위가 전국 각지의 경찰서를 통해 입수했는데, 당시에는 희생 사실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였으나 2기에서는 김광동 위원장 주도로 희생자의 부역 여부를 증명한다며 진실규명 불능이나 보류 조처를 내리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5712 "특검 얘기 안 하는 게 위선" 李 작심발언 두둔한 유승민 랭크뉴스 2024.05.01
15711 [단독] ‘누리호 기술유출’ 혐의 받던 항우연 연구자 억울함 풀었다…검찰 무혐의 결론 랭크뉴스 2024.05.01
15710 홍익표 "내일 본회의서 '채상병 특검법' 등 처리 안 되면 의장 순방 못 가" 랭크뉴스 2024.05.01
15709 "저는 힘 날 때까지…" 나훈아 은퇴에 '라이벌' 남진 반응은 랭크뉴스 2024.05.01
15708 "야구학원 선생님이었는데…" 오재원 '마약 투약' 인정했다 랭크뉴스 2024.05.01
15707 '수출 효자' 반도체·자동차 약진…대미·대중 수출도 '훈풍' 랭크뉴스 2024.05.01
15706 [단독] 24살 어린 지적장애인 빼내 결혼 시도까지 한 60대 성년후견인 랭크뉴스 2024.05.01
15705 한때는 '비트코인 예수'라 불리던 그남자...탈세로 미국에 체포 랭크뉴스 2024.05.01
15704 아이 출산에 1억 원 현금 지원하면?…‘동기부여 된다’는 응답이 63% 랭크뉴스 2024.05.01
15703 테슬라 상황 이 정도였나…'슈퍼차저'팀 공중분해…500명 팀원 전원해고 랭크뉴스 2024.05.01
15702 애 낳으면 정부가 1억 지원? 국민 63% 대답은 “동기부여 된다” 랭크뉴스 2024.05.01
15701 “가정의 달 5월, 어린이·어버이날 선물 1위는 용돈” 랭크뉴스 2024.05.01
15700 트럼프 "韓은 부국, 왜 우리가 남지켜주나…美 제대로 대우하길"(종합2보) 랭크뉴스 2024.05.01
15699 소시민의 죽음과 다를까?···기업 총수 장례 기획하는 남자[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랭크뉴스 2024.05.01
15698 투숙객 수십명 탈출…지리산 뱀사골 민박집 덮친 불, 1명 사망 랭크뉴스 2024.05.01
15697 오늘부터 대중교통비 환급 K-패스 시작…경기·인천은 ‘무제한’ 랭크뉴스 2024.05.01
15696 “전기차 살려라” 현대차, 가격 할인에 충전 대행 서비스까지 ‘마른 수건 쥐어짜기’ 랭크뉴스 2024.05.01
15695 오늘부터 병원서도 마스크 의무 해제…코로나19 ‘관심’으로 하향 랭크뉴스 2024.05.01
15694 법원 “의대 증원 5월 중순까지 승인 말아달라…요청일 뿐 구속력 없어” 랭크뉴스 2024.05.01
15693 "역시 모터 달린 물건은 LG" 3년간 40% 성장한 LG전자 비밀병기는 랭크뉴스 202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