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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성경의 탈분단 사유
전쟁 시대의 평화
지난 2022년 7월 판문점에서 무장하지 않는 한·미 장병들이 근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쟁은 평화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당연하게 여기던 평범한 일상이 바로 평화라는 사실 말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평화는 모든 것을 지속하게 한다. 전쟁은 죽음이지만, 평화는 생명이다.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가 이를 증명한다. 전쟁 전에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일상이 지속되었고 생명의 안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개전 6개월에 접어든 가자지구에서는 3만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3년차에 접어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 5만여명이 사망했다.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도 모르고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는 것에 매달린 결과이다.

진짜·가짜 평화 ‘갈라치기’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해야 한다. 이데올로기건 국가를 위해서건 아니면 먼저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건 무조건 전쟁 말고 평화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피해를 최소화하고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어리석기만 한 인류는 종종 전쟁을 선택해왔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준비한다는 주장이 명제로 취급되기도 한다. 군비 증강과 군사훈련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도 공고하다. 한국과 미국은 대규모 연합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이에 대응한다며 북한도 미사일 도발을 이어간다. 재래식 무기에서 수세에 몰린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대응을 위해 한국은 최첨단 무기를 사들이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남북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행위들은 전쟁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양쪽 다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확장억제, 핵우산, 전략무기, ‘한국형 3축체계’, ‘핵반격 가상 종합훈련’ 등 화려한 군사용어가 가리키는 것은 죽음과 파괴라는 자명한 사실이 가려진다.

걱정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의 정책 방향이 군사적 대결 일색이라는 데 있다. 총선을 전후로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 나서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기정사실화하는 발표가 반복되었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비이성적인 북한”이 군사 도발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힘의 총선 공약에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을 강조하면서 한-미 동맹에 바탕을 둔 대북 억제력의 강화를 천명했다. 이미 윤 대통령이 튼튼한 안보를 내세우면서 군사적 충돌 시 군의 “선 조치 후 보고”를 지시했기 때문에 여당의 “원칙에 따라 대응”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의식에는 북이라는 ‘적’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큰 방향성이 자리 잡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나 대통령의 언설, 그리고 여당의 공약에 전쟁 위기를 평화로 전환하기 위한 의지나 비전이 있을 리 없다.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정치한 전략도 기대하기 어렵다.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다.

윤석열 정부의 ‘진짜 평화론’은 더욱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교류협력을 강조해온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구걸”하는 ‘가짜 평화’로 갈라치기 하면서 ‘진짜 평화’는 압도적인 힘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준비가 기관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통일부까지 ‘진짜 평화’를 하겠다고 한다. 교류협력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북한 ‘실상’ 알리기에 부처의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것은 북한을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굴복과 절멸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뜻한다. 통일부 장관의 입에서 “자유의 북진정책”이 언급되고 관계 기관이 주도하여 북한 내부의 혼란을 예측하는 토론회가 뒤를 잇는다. 윤석열 정부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북한 체제의 붕괴, 그리고 뒤이어 남한이 북한 지역을 통치해야만 ‘진짜 평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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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정의당, 평화 원칙 제시했지만

이번 총선의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유권자의 경고를 뜻한다. 검찰 독재, 경제 위기 등의 주요한 어젠다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지지율 열세 국면을 만회하기 위해 내세웠던 ‘북풍’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내세웠던 “종북세력”을 척결하자는 논리가 유권자에게 전혀 반향이 없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북한이라는 ‘적’을 호명하여 싸우고, 북한과 교류해야 한다는 이들을 ‘종북’으로 낙인찍는 논리가 표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전쟁과 대결에 동조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성은 최근 통계에서도 확인되는데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은 57.3%로 지속적으로 증가세에 있고, 향후 추진되어야 할 정책으로는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52.9%), ‘경제 교류 및 협력’(22.3%), ‘문화예술체육 등 비정치적 교류’(10.8%)로 나타났다.(한국방송 2023년 국민 통일의식 조사) 국민 대다수는 가짜 혹은 진짜라는 갈라치기가 아닌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를 소망하는 것이다. 군비 증강이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북한과의 대결로는 평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유권자는 직감하는 것이다.

4월3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22대 총선 남북관계 및 외교정책 공약 평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무조건적인 평화 지향으로 정책 기조 전반을 바꿔야 한다. 비단 윤석열 정부와 여당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남북 대화와 교류를 강조하는 것 말고 국민의힘의 대북정책과 큰 틀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민주당의 공약이 전쟁이 아닌 평화 패러다임에서 세심하고 전략적으로 구성된 것인지 반성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 여당을 심판한다는 큰 흐름 아래 상당한 의석을 차지하게 된 범야권도 한반도 평화라는 주요 어젠다를 감당할 만한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반대만으로는 결코 유권자의 지지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한다. 세계정세가 요동치며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현실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우선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은 한반도에서 ‘전쟁 절대 불가’라는 원칙에 합의하는 것이다. 평화라는 목표 아래 전략적이고 유능한 대북정책, 외교정책, 그리고 국방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는 미래의 ‘진짜 평화’를 위해서 현재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임을 기억해야 한다.

총선 즈음해서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가 주도하여 주요 정당의 남북관계 및 외교정책 공약을 평가하고 시민사회의 제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약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는 것이 토론회의 중론이었다. 녹색정의당만이 유일하게 “상호군축”, “대규모 연합훈련-핵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평화-공생 원칙 균형외교”, “제재완화-경협재개” 등 평화 원칙을 견지한 공약을 제시했다. 그리고 녹색정의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모두가 전쟁으로 내달리는 상황에서 평화 하기란 이다지도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진보정치가 그래 왔듯 녹색정의당의 정책은 분명 언젠가는 원내 정당들의 평화 정책을 견인할 것이다. 결국 모두가 평화밖에는 길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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