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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규씨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안에서 발견한 천연기념물 소쩍새의 사체를 들어보이고 있다. 소쩍새는 주변의 투명 유리창에 충돌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민규씨 제공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 있는 한 민간기관에서 일하는 성민규씨(27)는 지난 24일 저녁 퇴근길에 캠퍼스를 거닐다가 나무 위에 놓인 갈색 물체를 발견했다. 얼핏 보기에 낙엽더미인 줄 알았던 물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쩍새 사체였다. 몸통이 성인 주먹만 한 소쩍새는 목이 살짝 꺾인 채 안구가 함몰돼있었다. 성씨는 “공교롭게도 그날 점심시간에 학교로 올라오며 소쩍새 소리를 듣고 반가웠는데 소쩍새를 (숨진 채로) 처음 만나게 돼 슬펐다”고 말했다.

소쩍새가 발견된 장소는 투명 유리창이 둘러산 이화여대 ECC(Ewha Campus Complex) 건물과 대학원 별관 사이 골목이었다. 캠퍼스에서 조류충돌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화여대에서 유리창에 새들이 충돌해 죽는 문제를 알려온 ‘이화여대 윈도 스트라이크 모니터링팀’은 이번에 사체로 발견된 소쩍새도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것으로 추정한다. 새들은 투명 유리창을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난 26일 소쩍새 발견 장소에 가보니 투명한 유리창으로 건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골목 한쪽에 1.25m 폭 유리창이 줄지어있고 유리창 사이사이에는 햇빛이 반사되는 철제 구조물이 위치한 탓에 걸을 때마다 눈이 부셨다. 온라인 자연활동 공유 플랫폼인 ‘네이처링’이 진행하는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를 보면 2018년 7월부터 이날까지 ECC 주변에서 발생한 조류 충돌 사례는 294건이다.

소쩍새는 지난 24일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송이 기자


모니터링팀은 2019년부터 조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캠퍼스 내 유리창에 세로 5㎝·가로 10㎝ 간격으로 스티커를 붙일 것을 건의해왔으나 작업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씨는 “학내 구성원들이 조류 충돌을 막기 위한 방안을 알려주는데도 학교가 건축 미관상 이유로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캠퍼스 안에 있는 동물과도 공존하지 못하면서 ‘지속가능한 캠퍼스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공허한 문구 같다”고 말했다.

소쩍새는 국내에서 여름을 지내는 대표적인 철새다. 철새 이동이 본격화되면 이번 사고 같은 상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윤전 모니터링 팀장은 “올해 기록상으론 아직 소쩍새가 유리창에 충돌한 사건은 두 건인 것으로 파악되지만 (철새 이동이) 이제 시작한 만큼 향후 더 많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심 곳곳에서 새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문제는 반복된다. 야생생물법이 2022년 개정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야생동물의 추락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음벽이나 인공구조물을 관리해야 한다. 아직까지 적극적인 조치가 실행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지하철역 입구에는 투명 유리창에 독수리 등 맹금류 스티커를 부착해놨지만 이는 조류 충돌 효과가 낮은 조치인 것으로 전해졌다. 띄엄띄엄 붙어있는 맹금류의 스티커는 새들이 그 옆의 투명한 부분으로 피해가려고 하기 때문에 되려 유리창에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맹금류 스티커를 배포하고 있는 한국조류보호협회는 지난 23일 해당 스티커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 “야생생물법 시행규칙에 맞는 방법으로 조류충돌 스티커를 제작 또는 구입 후 배포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출입구의 투명 유리창에 맹금류 스티커가 붙어있다. 김윤전씨 제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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