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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의 드라마로 보는 세상]
‘눈물의 여왕’. 티브이엔 제공

‘눈물의 여왕’. 티브이엔 제공


눈물은 힘이 세다. 웃음을 곁들일 경우 그 힘은 더 강해진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애환을 감정 과잉의 극작과 연출로 풀어내면서 식민지 민중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신파극이 그랬다.

퇴행의 시대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요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화제가 된 까닭도 웃음을 곁들인 눈물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눈물과 웃음은 일상의 고단함을 털어내는 감정이지만 강요하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박지은 작가는 눈물과 웃음의 정서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대중의 공감을 끌어낸다. 순수하고 헌신적인 로맨스와 풍자와 해학의 코미디를 결합한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강하다.

그는 정형화된 등장인물과 과장된 극적 상황을 반복하면서 역전시키는 방식으로 눈물과 웃음을 직조한다. 청춘남녀의 사랑과 헌신적인 가족애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내조의 여왕’의 천지애(김남주)는 뛰어난 외모와 다른 무식한 언행으로 웃음을 유발하면서 백수 남편 온달수(오지호)를 내조하는 부부애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눈물의 여왕’의 백현우(김수현)는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지만, 재벌가 사위로 살면서 일상의 행복을 잃어버리고 이혼을 꿈꾼다. 하지만 아내 홍해인(김지원)이 난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눈물샘이 마를 날 없었고, 시청자는 그의 눈물에 공명했다. 완벽해 보이는 인물에게 치명적인 결함을 부여하고, 극단적인 갈등을 비틀면서 눈물과 웃음의 완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공감을 끌어내는 극작술 덕분이다.

‘눈물의 여왕’. 티브이엔 제공

티브이엔 제공

우스꽝스러운데 서글픈, 이른바 ‘웃픈’ 상황들은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문제적 현실을 환기한다. 가족애에 초점을 맞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시월드’라는 신조어로 가부장제의 폐해를 드러냈고,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별에서 온 그대’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시선으로 자본주의의 맹점을 건드렸다. ‘사랑의 불시착’은 남한의 재벌가 여성과 북한의 엘리트 군인 남성의 로맨스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분단 현실을 조망했다. 그러고 보면, ‘눈물의 여왕’에서 재벌가의 사위들이 앞치마를 착용하고 제사상을 준비하는 장면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문제를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진부하고 상투적이어서 새롭지 않을 것 같은 극적 상황들을 우스꽝스럽게 비틀어 현실성을 담보하는 방식이다.

‘내조의 여왕’에서 식품업으로 기반을 다진 퀸즈그룹은 ‘눈물의 여왕’에서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사랑의 불시착’처럼 후계 승계 문제로 가족 간에 갈등을 겪는다. 경영 능력이 뛰어난 딸들과 달리 아들들이 무능한 점은 비슷하지만, 퀸즈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 악인들을 등장시켜 갈등을 극대화한다. 아버지들은 딸의 능력을 인정하지만, 어머니들은 아들 편에서 딸을 견제한다. 유교적 가부장제의 장자 상속 문제를 건드리는 것 같지만, 가족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복적인 세계관이라 하기는 어렵다.

퀸즈백화점의 1조 클럽 가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홍해인과 달리 그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경영권을 강탈당하는 과정에서의 어리석은 행태는 웃으며 넘기기 어렵다. 평생을 호사스럽게 살다가 무일푼으로 쫓겨난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기 밥벌이조차 어려울 것 같은 사람들이 희화화되면서 재벌기업의 탈법적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탈각될 수 있음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물론 퀸즈그룹 일가의 모습이 대한민국 재벌가의 실상은 아니다. 하지만 코미디 장르의 속성상, 이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연출될수록 시청자의 우월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재벌가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 여기에 백현우와 홍해인의 지고지순하고 운명적인 사랑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면 재벌에 대한 현실 감각에 교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고단하고 피곤한 일상의 탈출구 같은 로맨틱코미디에서 재벌가 사람들을 과장되게 비틀어 웃음을 유발하고 인간적 매력을 부여하는 극작술이 아쉬운 까닭이다.

그러나 박지은 작가가 구사하는 눈물과 웃음의 전략이 당대의 문제적 현실을 환기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퀸즈그룹 세계관을 공유하는 그의 로맨틱코미디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물질적 욕망에 관한 속물근성을 풍자한다. 궁극적으로 지고지순한 사랑과 헌신적인 가족애를 강조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내조의 여왕’에서 ‘눈물의 여왕’을 관통하는 퀸즈그룹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드라마 생태계가 급변하는 환경에서 ‘눈물의 여왕’이 장안의 화제였던 만큼 그의 로맨틱코미디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할지, 아니면 답보 상태에 머무를지 자못 궁금하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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