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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과정에서 동물학대 논란을 빚은 영화 '파묘'의 제작진이 최근 입장을 밝혔다. 영화 '파묘' 스틸컷


2024년 첫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 촬영 과정이 비인도적었다는 지적에 대해 제작사가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촬영 과정에서 실제 동물 사체를 사용하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촬영에 동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인데, 문제를 제기한 동물단체는 제작사의 답변에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지난 18일, 영화 ‘파묘’ 제작사 쇼박스는 동물권행동 ‘카라’에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이 공문은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해 카라가 의문을 제기하는 공문을 발송한지 37일 만의 답변이었습니다. 영화 상영 이후 카라의 ‘동물 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동모본)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대살굿 장면에서 돼지 사체 5구를 칼로 난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살아서 펄떡대는 은어를 묘지 주변에 뿌린다’는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카라는 이 의견을 취합해 해당 장면 촬영 과정에 대한 설명을 쇼박스에 요구한 바 있습니다.

2024년 첫 천만 영화로 기록된 영화 '파묘'의 대살굿 장면. 당시 실제 돼지 사체 5구가 촬영에 동원된 것으로 확인돼 비인도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영화 '파묘' 스틸컷


문제 제기된 장면에 대해 쇼박스는 ‘돼지 사체를 실제로 사용한 게 맞다’고 답했습니다. 공문에 따르면 제작진은 “영화상 표현을 위해 필요한 일부 장면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이 출연했다”며 “촬영 시 동물 섭외 전문 업체 및 양식장, 소유자 등을 통해 섭외됐다”고 동물 섭외 경위를 밝혔습니다. 또한 동물 사체 사용에 대해서는 “축산물을 정상적으로 유통 및 거래하는 업체를 통해 5구를 확보해 운송했고, 영화적 표현으로 필요한 부분은 미술 연출 등이 추가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은어가 쓰인 것으로 보이는 장면에 대해서도 “최대한 젤리로 만든 대체품을 활용해 촬영하긴 했으나, 일부 장면에서 영화적 표현을 위해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 양식장에서 확보한 은어를 활용했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이 촬영 과정에서 동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각 관리 주체의 현장 감독과 자문을 받았다”며 “수의사가 대동 및 배치되어야 하는 장면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쇼박스의 답변에 카라는 “죽은 동물은 촬영 소품이 아니다”라며 “아무리 식용 목적으로 도축됐다고 하더라도 오락적인 이유로 다시 칼로 난도질하는 것이 생명을 대한 인간의 합당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2년 전,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상어 사체를 전시했다가 시민들의 비판을 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시민들의 생명 감수성은 그때보다 높아진 상태”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영화 등 미디어 촬영 과정에서 동물 촬영이 필요할 경우 동물단체의 모니터링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또한 카라는 사체 부패 및 질병 확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실제 동물 사체를 사용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미국에서 미디어 촬영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 ‘미국 인도주의 협회’(American Humane Associaton∙AHA)는 실제 사체를 사용할 경우 제작진에 ‘영화를 위해 도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와 촬영 이후 법률에 따라 즉각적인 화장 또는 매장 방식으로 사체를 처리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복잡한 절차 탓에 미국에서는 실제 동물 사체보다는 소품을 활용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고 카라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물 안전 전문가도 현장에 부재했다는 사실이 지적됐습니다. 카라 권나미 활동가는 동그람이에 “제작사 측은 ‘섭외 업체나 소유주’가 현장에서 지켜봤다는 사실을 언급하는데 그들을 ‘동물 안전 전문가’로 봐야 할지 의문”이라며 “소유주나 섭외 업체는 동물을 재산으로 취급하는데, 그들은 결국 동물이 다치면 경위에 따라 보상만 받아 가면 그만”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 측은 쇼박스의 답변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권 활동가는 “답변을 준비할 때 카라에서 내놓은 동물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참고한 듯해 성심성의껏 답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미 지나간 촬영 과정은 어쩔 수 없지만, 차후 동물 촬영 시에는 더 주의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노력이 제작사 또는 미디어 종사자 개인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권 활동가는 “일부 제작자의 경우 카라에 시놉시스를 보내며 ‘동물을 안전하게 촬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면서도 “제작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아 제작자가 각자 알아서 자료를 찾아가며 확인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사회적 합의를 거친 ‘동물학대 방지 미디어 제작 가이드라인’입니다. 실제로 2년 전, 정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22년, 퇴역 경주마 ‘마리아주’(까미)가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과정에 동원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 공론화된 까닭이었습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김종훈 차관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KBS, 한국방송협회, 한국피디연합회, 동물보호단체 등과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정부가 주관해 만든 가이드라인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가이드라인 초안은 협의체 구성 이후 4개월 만인 2022년 6월 제작돼 제출됐지만, 미디어 업계 관계자들이 ‘가이드라인이라는 표현이 규제를 연상시킨다’며 거부감을 드러내 논의가 중단된 겁니다. 이후 가이드라인과 관련된 협의체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미디어 업계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동물보호 촬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카라는 주장합니다. 권 활동가는 “AHA는 미국 배우 협회와 연계해 촬영 현장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인증 마크를 제공한다”며 “국내에서도 업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런 체계를 도입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언제까지 정부 가이드라인을 기다릴 수도 없는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문제 제기하고,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사건이 되풀이되고만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국내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업계의 변화를 이끌어줄 때”라며 “업계가 동물학대 없는 촬영현장을 만들기 위해 동물단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협조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email protected]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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