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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문화 칼럼니스트
‘아일릿은 뉴진스의 카피다.’ 며칠 새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발표문의 이 문구는 법적으로는 별 효력이 없는 말이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아일릿이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안무, 사진, 영상, 행사 출연 등 연예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희진 풍’ 혹은 ‘민희진 류’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자신의 창작 ‘콘셉트’를 베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법에서 보호받는 대상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구체적인 결과물이 아니고 전반적인 ‘이미지’나 ‘스타일’로는 표절의 법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팬덤은 논리적이지 않고 신비
팬심이 창작자 의도보다 중요
뉴진스 활동 중단될까 우려 커

판앤펀
팬들은 각자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법에 맞춰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산업이 가장 독특해지는 지점은 인간의 ‘매력’이라는 상품에 예측할 수 없는 ‘팬덤’이라는 신비한 마음의 영역이 대응한다는 점이다. 물적인 상품들과는 달리 대중문화 히트의 규칙이나 비밀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느 곳에서 스타의 매력을 찾아낼지 모른다. 팬덤은 논리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있지도 않다. 예측과 기대는 종종 어긋난다. 클리셰로 범벅된 드라마, 스캔들로 얼룩진 스타, 가창력 논란을 달고 다니는 가수에게도 매료되는 이유다. 누구의 아류 혹은 카피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매력을 느껴버린 팬덤은 말릴 수가 없다.

아일릿은 논란 속에서도 데뷔곡 ‘Magnetic’으로 빌보드 핫 100에 오르는 새 역사를 썼다. K팝과 한껏 사랑에 빠져버린 세계적 팬들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뉴진스로 K팝의 물꼬를 확실히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 민희진 대표는 하이브 방시혁 대표의 창작 윤리나 리더십을 제작자 입장에서 탓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이 뉴진스와 아일릿의 관계를 K팝의 새 트렌드 혹은 장르의 전형적인 탄생과정에서 등장하는 ‘파이오니어’와 ‘팔로워’의 관계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는 결국 창작자의 의도가 아니라 팬들의 수용 여부가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팔로워로서도 결국 자신만의 독창적인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자기복제만 거듭된다면 팬덤은 또 한순간 싸늘하게 식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제 겨우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두 그룹을 놓고 훗날의 결과를 예측하긴 이르다.

제작자로서 자신의 독창성을 주장하려던 민 대표의 발언은 팬들의 마음을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일릿이 뉴진스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말을 계기로, 모기업과 산하 레이블 제작자가 벌이는 싸움을 경영권 탈취 논란 등 업계의 분쟁으로 지켜보려던 팬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뉴진스만의 매력을 팬심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들의 스타일을 낱낱이 살피며 ‘카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스타의 매력을 제작자 스스로 깎을 여지를 줘버린 것이다. 또 “뉴진스의 멤버들과도 논의를 거쳤다”는 발언에 팬들로서는 피프티피프티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싸움이 큰 논란 뒤에 결국 대중들이 원하는 정의를 되찾은 방향으로 갔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뉴진스에 앞서 엄청난 새 역사를 썼던 여성 그룹의 놀라운 성취와 미래 가능성은 한 순간 정지되어 버렸다. 멤버들과 가족들이 싸움에 끼어든 순간 그룹은 활동을 중단하고 평생 가수들의 꿈이라고 할만한 무대와 기회들을 박차버렸다.

이 그룹이 앞으로 다른 인원으로 채워 활동하겠다고 하지만 딱 한 곡 히트시키고 사라졌던 그들이 낯선 얼굴로 등장할 때 팬들의 마음이 움직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뉴진스 팬들이 하이브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으로 시위를 벌인 것은 혹시라도 민 대표 측과 가족들이 함께 긴 법적 분쟁을 벌이게 될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그 경우 뉴진스의 오랜 활동 중단은 불가피하다. 팬들에게는 가장 슬픈 결과다.

이 산업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란 없다. 아티스트도 프로듀서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그러기에는 너무나 많은 스타와 실력자들이 전 세계에서 성장하고 있다. 한 발만 삐끗해도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한때 반짝했다 사라지는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지금은 새로운 ‘콘셉트’보다, 대세를 거스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 팬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의 꾸준한 활동과 성장이다.

이렇게 전 세계의 팬들을 들썩이게 하는 큰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5월부터 뉴진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원래 계획대로 씩씩하게 활동할 수 있을까. 싸움은 언젠가 어떻게든 끝나겠지만, 팬들의 마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올까.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팬들은 가시방석이다. 비즈니스는 모르겠고, 어서 나에게 예전처럼 노래를 들려줘. 팬들의 마음은 이렇지 않을까.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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