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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 프로젝트’ 김준영씨
경향신문 플랫 입주자 프로젝트 ‘엄마 성 빛내기’ 참여자인 김준영씨가 수원가정법원의 심판결정문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법원은 지난 22일 김씨가 청구한 성·본 변경 심판에 대해 허가를 결정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수원가정법원, 성인의 성·본 변경 심판 이례적 허가

청구 이유만 60장 제출…“성평등·어머니 역할 강조”

인용 사유 불분명한 한계도…“법·제도 개선도 필요”


법원이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자신의 성씨를 ‘어머니 성’으로 변경하겠다는 성·본 변경 심판 청구를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껏 법원은 주로 이혼·재혼 가정 등의 미성년 자녀에 한해 ‘친부가 (자녀의 성장에) 기여하지 않은 때’만 어머니 성으로 변경하는 것을 허가해왔는데, 허가 범위를 넓히는 사례가 나왔다고 평가된다.

24일 수원가정법원은 김준영씨(36)가 청구한 성·본 변경 심판에 대해 “사건 본인의 성을 ‘김’으로, 본을 ‘의성’으로 변경할 것을 허가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준영씨는 아버지 성·본인 ‘사성 김해김씨’에서 어머니 성·본인 ‘의성 김씨’로 변경할 수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경향신문 플랫의 입주자 프로젝트 ‘엄마 성 빛내기’를 기획했다.

‘엄마 성 빛내기’는 어머니 성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전국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고, 부성 우선주의에 균열을 내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는 총 137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일부가 지난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전국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서를 제출했다.

호주제 폐지 이후 ‘부성 강제주의’는 사라지고 현행 민법은 ‘부성 우선주의’를 따르고 있다. 혼인신고 때 협의하면 자녀에게 모성을 물려줄 수 있지만 출생부터 부의 성을 따랐다면 이후 바꾸기 어렵다. 김씨처럼 법원에 성·본 변경 심판을 청구하거나, 부모가 이혼했다가 다시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김씨는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사회의 성평등 실현을 위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의미를 담아 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고 이를 통해 성평등 의식을 길렀다는 점, 삼남매를 키워내는 데 어머니가 큰 역할을 했으나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평가 절하되고 있다는 점, 이런 청구 취지에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적극 응원한다는 점을 청구서에 담았다. 김씨는 “청구 이유만 A4 용지 60장에 달할 정도로 청구서를 상세하게 썼다”며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건 어머니가 그간 가정 안팎에서 해온 일과 어머니 역할에 대한 위상을 높인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성인이 성평등 가치를 위해 어머니 성을 쓰겠다는 청구가 받아들여진 것에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원의림 변호사(법률사무소 의림)는 “법원은 ‘자녀 복리를 위한 필요성’을 따져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성·본 변경을 허가해왔는데, 성인이 직접 성평등을 강조한 케이스가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에 법원이 응답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일”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결정이 부성 우선주의를 완전히 깨뜨리는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 변호사는 “법원 결정문을 보면 ‘청구가 이유 있으므로 허가한다’는 한 줄뿐인데, 가정 내 성평등 실천 의지를 주요하게 봤는지, 청구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법원이 인용 이유를 좀 더 상세하게 밝힌다면 성평등을 근거로 한 성·본 변경 선례가 더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법원이 폭넓게 성·본 변경 사유를 넓히는 것만큼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성 우선주의를 바꿔나가려면 법과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부모의 협의를 통해 자녀의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고 여성가족부는 2021년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하며 자녀의 성 결정을 ‘부모 협의 원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가 바뀌고 제도 개선에 대한 노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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