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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플랫 입주자 프로젝트 ‘엄마 성 빛내기’ 참여자인 김준영씨가 2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수원가정법원의 심판결정문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법원은 지난 22일 김씨가 청구한 성·본 변경 심판에 대해 허가를 결정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법원이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자신의 성씨를 ‘어머니 성’으로 변경하겠다는 성·본 변경 심판 청구를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껏 법원은 주로 이혼·재혼 가정 등의 미성년 자녀에 한해 ‘친부가 (자녀의 성장에) 기여하지 않은 때’만 어머니 성으로의 변경을 허가해 왔는데, 허가 범위를 넓히는 사례가 나왔다고 평가된다.

24일 수원가정법원은 김준영씨(36)가 청구한 성·본 변경 심판에 대해 “사건 본인의 성을 ‘김’으로, 본을 ‘의성’으로 변경할 것을 허가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준영씨는 아버지 성·본인 ‘사성 김해김씨’에서 어머니 성·본인 ‘의성 김씨’로 변경할 수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경향신문 플랫의 입주자 프로젝트 ‘엄마 성 빛내기’를 기획했다. ‘엄마 성 빛내기’는 어머니 성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전국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고, 부성 우선주의에 균열을 내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는 총 137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일부가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국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서를 제출했다.

📌[플랫]“성씨 별거 아니라면 왜 엄마 성은 안 되나요?” ‘엄마 성 빛내기’ 전국 법원에 40여명 성·본 변경 청구했다

📌[플랫입주자프로젝트 - 엄마성 빛내기]엄마가 말했다 “엄마부터 엄마 성으로 바꿔볼게”

호주제 폐지 이후 ‘부성 강제주의’는 사라지고 현행 민법은 ‘부성 우선주의’를 따르고 있다. 혼인신고 때 협의하면 자녀에게 모성을 물려줄 수 있지만 출생부터 부의 성을 따랐다면 이후 바꾸기 어렵다. 김씨처럼 법원에 성·본 변경 심판을 청구하거나, 부모가 이혼했다가 다시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김준영씨가 2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씨는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사회의 성평등 실현을 위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의미를 담아 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고 이를 통해 성평등 의식을 길렀다는 점, 삼남매를 키워내는데 어머니가 큰 역할을 했으나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평가 절하되고 있다는 점, 자신 역시 결혼 이후 자녀가 생기면 성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혼인신고 때 표시하지 않으면 물려줄 수 없게 제도화되어 있어 실망했다는 점, 이런 청구 취지에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적극 응원한다는 점을 청구서에 담았다. 김씨는 “청구 이유만 A4 용지 60장에 달할 정도로 청구서를 상세하게 썼다”며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건 어머니가 그간 가정 안팎에서 해 온 일과 어머니 역할에 대한 위상을 높인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성인이 성평등 가치를 위해 어머니 성을 쓰겠다는 청구가 받아들여진 것에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원의림 변호사(법률사무소 의림)는 “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위한 필요성’을 따져서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성·본 변경을 허가해왔는데, 성인이 직접 성평등을 강조한 케이스가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에 법원이 응답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일”이라고 말했다.

📌[플랫]“‘부성이 기본값인 사회’에 질문 던지고 싶다”…‘엄마 성 빛내는’ 법률자문단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서울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어머니의 성을 쓰고 싶은 어른들이 모여 열린 ‘엄마 성 빛내기’ 기자회견에서 한 어린이가 손피켓을 들고 엄마 성으로 성·본 변경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다만 이번 결정이 부성 우선주의를 완전히 깨뜨리는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 변호사는 “법원 결정문을 보면 ‘청구가 이유 있으므로 허가한다’는 한 줄 뿐인데, 가정 내 성평등 실천 의지를 주요하게 봤는지, 청구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법원이 인용 이유를 좀더 상세하게 밝힌다면 성평등을 근거로 한 성·본 변경 선례가 더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법원이 폭넓게 성·본 변경 사유를 넓히는 것만큼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성우선주의를 바꿔 나가려면 법과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부모의 협의를 통해 자녀의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고 여성가족부는 2021년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하며 자녀의 성 결정을 ‘부모 협의 원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가 바뀌고 제도 개선에 대한 노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 김정화 기자 [email protected]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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