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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판치는 비대면 마약거래
환각버섯 등 신종마약 밀매 늘고
대마·엑스터시 등 복합투약 증가
◇공급책 '놀이터'된 텔레그램
거래 이벤트 열고 구인구직 성행
가상화폐 수수료 현황 공개하기도
사정당국 감독 강화에도 역부족
[서울경제]

‘○○○’이라는 이름을 건 텔레그램의 한 오픈 채팅방.

아이스, 캔디 등을 판매한다는 글이 실물 사진과 함께 수없이 올라왔다. 아이스와 캔디는 각각 메스암페타인(필로폰)과 MMA를 뜻하는 마약 은어다. 또 ‘몰리’라는 생소한 이름도 눈에 띄었다. 이는 합성 마약인 엑스터시(MDMA)의 정제된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하고 나서야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필로폰은 물론 코카인·케타민·엑스터시·리서직산디에틸아마이드(LSD)·합성액상대마(브액) 등까지 말 그대로 ‘온라인 종합 마약 마켓’이었다. 이들 공급책은 텔레그램 오픈 채팅방에서 광고 글로 구매자를 모집했다. 우선 ‘○○g당 ○○○만 원’이라는 내용과 함께 이른바 ‘좌표 찍기’를 했다. 거래가 가능·불가능 장소를 구분해 게재하는 방식이다. 이를 보고 찾아오는 이들과 각종 마약을 거래했다. ‘광고글→개인 채팅→드로퍼(중간 전달책) 전달→던지기’로 마약을 거래하는 것이다.



안지성 법무법인 안팎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는 “최근 쉬룸이라는 환각버섯 등 신종 마약에 대한 밀매가 늘고 있다”며 “과거에는 하나만 (투약)했다면 최근에는 대마와 엑스터시 등을 섞어서 투약하는 사례가 많아 공급책(거래상)들도 텔레그램 오픈마켓 등에서 여러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요에 따라 공급책들이 각종 마약을 취급하는 ‘종합 판매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드로퍼를 수사해달라’는 글이었다. 마약을 해외에서 밀수하거나 투약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배달 사고’가 발생하자 드로퍼의 사진, 주민등록증 등까지 신상 정보를 공개해 사정 당국에 간접 제보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글에서는 드로퍼의 사진과 휴대폰 번호는 물론 주소·주민등록증·가족관계증명서 등까지 포함됐다. 또 ‘환전한 가상계좌(코인) 추적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거나 ‘추가 검거할 때 쓸 수 있는 정보, 도매좌표 등도 제공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심지어 ‘잡으면 특급 승진’ ‘가장 빠르게 승급하실 분들은 긴급 체포 후 연락주시면 ○○건까지 전부 오픈하겠다’ ‘잡는 형사분은 특급 2단 승진 증거 자료를 다 내겠다’는 사정 당국을 조롱하는 말마저 함께 게재됐다.

마약 수사에 정통한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마약 공급자들은 드로퍼를 고용할 때 본인 사진과 주민등록증은 물론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텔레그램이 지닌 익명성까지 더해지면서 공급자들이 드로퍼에 대한 공개적 수사를 요구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 기관의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본인들에게 손실을 준 드로퍼들을 응징하려는 셈이다. 일부 광고 글에서는 공급책을 사칭하는 이들이 많다며 텔레그램 아이디를 대거 공개하기도 했다.

여기에 마약 거래와 관련한 이벤트·구직 등까지 이뤄졌다. 이벤트의 경우 텔레그램 오픈 채팅방에서 자주 방문해 글을 남기면 경험치를 제공하고 순위에 따라 수십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또 ‘함께 마양(마약)을 판매할 인재를 구한다’며 조건으로 인싸(인사이더·속한 무리 내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 오래 일한 분 등을 제시했다.

일부 글에서는 마약 거래에 주로 쓰이는 가상자산 수수료 현황도 함께 공개했다.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이미 텔레그램 오픈 채팅방이 마약 공급책들의 ‘놀이터’로 변질해 있는 모습이었다.

텔레그램 등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된 데 따라 사정 당국도 적극적 대처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검찰청은 올 1월 18일부터 e드러그 모니터를 전국 18개 지방검찰청에 배포·운영하고 있다. 또 최근 태국 마약청(ONCB)에 국내 수사관도 파견했다. 한국·태국은 양국 사이 마약 밀수 범죄에 즉각 대응하고자 2019년부터 수사관을 상호 파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마약청에도 수사관을 파견해 공조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마약 밀수 사건과 관련해 발송책을 수사하거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국외 출장 예산이 올해 신설된 데 따른 움직임이라는 게 대검찰청의 설명이다. 대검의 마약 수사 예산은 2023년 48억 원에서 올해 82억 원으로 2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그동안 마약 예산이 사실상 정체 상태였던 데다 관련 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채윤석 대륙아주 변호사는 “대마가 합법화된 태국에서 마약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국내에서는 비싸게 팔리다 보니 몰래 들여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텔레그램의 경우 (사정 기관의) 압수수색도 어렵고 현장 확보하기까지 적발이 어려워 마약 거래에 주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마약 등 사건과 관련해 텔레그램을 복원하는 등 디지털포렌식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한계점이 있다”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휴대폰을 촬영해 채증(증거 수집)하거나 암행 수사하는 등 수사 기법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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