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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안내문 정비·관련 행사 보조금 중단 ‘역사 바로잡기’
23일 오전 울산 중구 학성공원에서 한 시민이 ‘울산동백꽃 이야기’ 팻말을 보고 있다. 배현정 기자

“학성공원 올 때마다 ‘고향 꽃’ 글귀를 읽고 자부심을 엄청 느꼈지. 어릴 때 소풍 와서 동백꽃이 만개한 걸 본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데. 우리 꽃이 아니라니까 섭섭하네.”

23일 오전 울산 중구 학성공원에서 안내판을 살피던 윤미순(57)씨가 ‘울산 동백꽃’이란 문구를 짚으며 말했다. 공원에는 무성하게 자란 동백나무 20여그루가 산책로를 따라 서 있었다. 산책로 변에 세워진 울산동백 안내판 4개는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안내판에 적힌 울산동백의 기원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잇따랐던 탓이다. 공원에서 만난 최정미(58·중구)씨도 “일본에서 어렵게 가져온 우리나라 동백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일본 꽃이라고 하니 마음이 씁쓸하다”고 했다.

울산동백은 일본에선 ‘오색팔중산춘’으로 불린다. 오색팔중산춘이 울산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계기는 1989년 4월, 일본 교토시 북구 기타노하쿠바이초에 있는 사찰 지장원(지조인) 안내판에서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상하기 위해 울산의 동백나무를 가져갔다는 내용이 발견되면서다. 3년 뒤인 1992년에 울산시민들이 임진왜란 400년을 맞아 지장원에서 동백 묘목을 기증받아 울산시청 앞마당에 심었고, 이때부터는 아예 ‘오색팔중산춘’을 울산동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뒤 울산시는 2012년부터 해마다 울산동백에 찻물을 붓는 행사를 열어왔다. 울산 중구는 2017년 울산동백을 구화로 지정하고, 축제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울산동백이 과연 400여년 전 울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꽃인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다. 울산역사연구소가 검토에 나서 결국 오색팔중산춘을 울산동백으로 볼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울산동백을 일본에 가져간 시기나 지장원에 제공한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동백의 울산 기원설을 기록한 일본의 문헌에는 도요토미가 지장원에 울산동백을 기증한 게 대규모 차 행사라고 돼 있지만, 실제 이 행사가 열린 건 임진왜란 전인 1587년이란 사실도 확인됐다.

교토시 문화시민국 역사자료관 관계자는 “역사자료관에는 오색팔중산춘을 울산에서 가져왔다는 이야기의 근거가 될 만한 간행물이 없다. 지장원의 동백이 울산에서 건너간 것이란 얘기가 있다는 걸 알지만,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현재 애초 울산 원산지설이 적혀 있던 지장원 안내판 대목도 지워진 상태다.

지난 18일 아침 8시께, 울산시청 앞마당 울산동백 나무 앞에 꽂혀 있던 팻말이 제거됐다. 배현정 기자

뒤늦게 울산시도 이달부터 울산동백과 관련한 안내문 등을 정비하고 있다. 당장 울산시청 광장에 자라는 울산동백 10그루의 표지판을 없앴다. 울산동백 관련 행사와 보조금 지급도 중단하고 공원 안내판도 모두 없앨 계획이다. 울산동백을 ‘구화’로 정한 울산 중구도 뒤늦게 변경 절차를 밟고 있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은 “일본 민가나 지장원에 있는 오색팔중산춘은 400년이 훨씬 넘은 고목들이어서 한국에서 임진왜란 때 넘어갔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며 “엄격한 고증을 거치지 않고 지자체가 앞장서 엉터리 역사를 전파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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