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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래됐지만 계속 혁신 나이키

나이 많은 대기업이 혁신적이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100여년간 세계시장을 지배해온 거대 기업들이 최근 대거 위기를 맞고 있다. 코닥, 노키아, 제록스 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GM은 파산보호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전설적인 GE마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어떤 약점 때문일까? 실은 강점 때문이다. 큰 기업은 규모의 경제와 효율적 시스템, 풍부한 자원 등 강점이 많지만, 환경변화와 함께 강점이 약점으로 바뀌게 된다. 성장에 따른 복잡성과 경직성 때문이다. 규모가 커지면 조직이 많은 계층과 부서로 복잡하게 분화되므로 신속한 통합조정이 어렵다. 또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려면 공식 규칙과 절차에 따라야 하므로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 복잡성과 경직성은 시간 경과와 함께 계속 심해지므로 오래된 대기업은 느리고 변화가 어렵다.

나이와 규모의 한계를 극복

오래된 글로벌 대기업이지만 신생 스타트업보다 더 혁신적이고 민첩한 기업이 나이키다. 나이키는 1964년에 창업했으므로 결코 젊은 기업이 아니다. 업종도 스포츠용품이므로 혁신이 강조되는 하이테크와 거리가 먼 전통적 소비재 제조업이다. 종업원도 7만 5000명으로 라이벌인 아디다스나 퓨마보다 훨씬 크다. 그렇지만 나이키는 수익 규모가 2위와 3위 업체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클 정도로 글로벌 스포츠용품업계를 압도해온 것은 물론, 패션전문업체가 아님에도 지난 10여년간 루이뷔통과 구찌를 제치고 최고의 패션브랜드 지위를 지켜왔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성과 민첩성 덕분이다.

나이키가 창사 이래 끊임없이 시도해온 혁신의 최근 예가 2019년의 획기적 비즈니스모델 전환이다. 첨단 디지털 산업에서 일해온 존 도나호가 최고경영자(CEO)로 선발되자 전문가들은 스포츠용품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 도나호는 취임하자마자 “디지털의 가능성 극대화를 통한 고객중심성(Digitally Enabled, Customer Centric)”이라는 스포츠용품산업과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 비전을 선포하며 나이키를 단 1년 만에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새로운 비전을 기반으로 나이키는 생산자중심 대량생산에서 탈피해 고객 각자의 다양한 수요를 개인별로 차별화해서 충족시키는 고객중심 대량개인화 전략을 단행했다.

고객 중심 대량개인화 전략

먼저 나이키는 고객 중심 대량개인화에서 가장 중요한 각 고객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과 개인별 데이터 확보를 위해 핵심 판매망이던 아마존을 비롯한 외부 유통업체 납품을 중단했다. ‘나이키 디지털’이라는 자체 디지털 플랫폼을 설립해 고객과의 직접 상호작용을 시작했다. 또 각 고객이 자기 상품의 디자인, 색상, 소재를 선택해 개인별로 맞춤화하는 ‘나이키 아이디(Nikeid)’나 ‘나이키 바이 유(Nike By You)’ 등 획기적 대량개인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나이키는 또 고객과 개인화된 상호작용을 강화하기 위해 ‘나이키 고객경험(Nike Customer Experience)’ 시스템을 구축하고 핵심 프로그램으로 ‘나이키 달리기클럽’과 ‘나이키 피트니스클럽’을 지역별로 설립했다. 스마트폰 GPS 기능 등을 활용해 고객 각자의 달리기 거리와 코스, 운동 강도, 빈도 등의 다양한 개인화된 행동 정보들을 모바일로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 뒤 개인별로 필요한 운동 프로그램과 스케줄 등을 추천해주고 또 각자에게 최적화된 스포츠용품 교체 주기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이키는 그 어떤 실리콘밸리 기업보다 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나이키는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개별 고객과 수시로 상호작용하고, 빅데이터에 기반해 고객의 수요변화를 정확히 분석했다. 이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의 혁신을 가속화하며 시장의 진화를 선도했다. 기존 오프라인 매장은 경험센터로 전환해 고객들이 쉴새 없이 출시되는 나이키 신상품과 서비스 혁신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판매는 대부분 나이키 디지털을 통해 실행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이키가 이런 디지털 기반 고객 중심 대량개인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신임 CEO가 취임한 2019년 단 1년 만에 완수했다는 것이다. 성급한 시도로 비판받을 수도 있었던 이 신속한 변화의 결과로 2019년 말 갑자기 닥친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쟁업체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나이키는 오히려 더 급성장하며 독주할 수 있었다.

계급장 떼고 붙는 ‘벗페이스’

최초의 벗페이스 세션 참가자들. 왼쪽부터 제프 존슨, 밥 우델, 스티브 프리폰테인, 필 나이트(창업자), 롭 스트라서, 빌 바우어만. 이 중 제프 존슨이 ‘벗페이스’라는 표현을 처음 썼다고 한다. 필 나이트의 회고록 ‘슈독’ 캡처

나이키가 고비 때마다 민첩한 혁신적 대응으로 급성장을 거듭해온 데는 ‘벗페이스(Buttfaces)’로 불리는 끝장토론 문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벗페이스는 ‘내 엉덩이에 얼굴이나 처박아’ 정도로 번역되는 거친 쌍욕인데 나이키의 독특한 의사결정과 회의 문화를 상징한다. 창업 CEO인 필 나이트가 포함된 경영진 회의에서 토론이 격렬해졌을 때 한 참가자가 실제로 “벗페이스”라고 소리치며 쌍욕을 한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나이키의 독특한 문화이면서 동시에 끝장토론 세션을 뜻한다.

벗페이스 세션의 핵심은 CEO를 포함한 그 어떤 참석자의 의견도 면전에서 직설적으로 반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참가자는 아무런 금기 없이 서로의 의견을 난도질 수준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 과정에서 쌍욕에 가까운 모욕적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그 결과 극소수의 최고의 아이디어만 벗페이스를 통과한다. 살아남은 아이디어는 전체 조직이 전력을 다해 철저하게 실행한다. 벗페이스 문화를 통해 나이키는 기존의 강점을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선도기업들이 빠지기 쉬운 ‘성공의 덫’을 극복하며 혁신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사가 자기 의견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억누르는 일반적 조직문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금기 없는 끝장토론은 극도로 불확실성하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생존의 필수요건이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기업의 취약성은 두드러진다. 경영진은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고 젊은층은 상처받는 것에 민감하다. 이런 현실에서 벗페이스 문화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도전 과제일 것이다.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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