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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코로나 등 폐관 고비
인천시 공공매입 추진도 답보
애관극장 전경. 김은형 기자

“1987년 인근 제물포고에 첫 발령을 받고 학생지도부 일을 하면서 영화관 출입증을 받았습니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에 학생 출입을 지도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인천에서 가장 좋았던 애관극장에 제일 많이 오면서 이곳에서 아내와 처음 손도 잡았죠. 이처럼 수많은 시민의 추억이 있는 애관극장이 꼭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인천 중구 개항로에 위치한 애관극장. ‘쿵푸팬더4’를 상영하는 400석 규모의 1관은 주말이 무색할 정도로 썰렁했지만 100석 규모의 3관은 오랜만에 북적였다. 130년 애관극장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2021)를 만들었던 윤기형 감독이 묶은 책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애사모)’ 회원들이 모인 것이다. 사실 축하는 핑계고, 당장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게 없는 애관극장의 미래를 지키고자 하는 바람과 다짐의 자리였다.

디지털 상영이 일반화되면서 극장의 필름 영사기는 거의 사라졌지만 애관극장 본관(1관) 사실에는 70㎜ 필름 영사기가 아직 남아있다. 김은형 기자

이날 관객 고보선씨가 되새긴 1987년은 애관극장의 역사로 보면 추억에도 끼지 못할 요즘 이야기다. 윤 감독의 말처럼 1895년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이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신기를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당시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져 1925년 지금의 ‘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영화뿐 아니라 창극, 연주회, 격투기 시합과 정치집회까지 열리며 늘 인산인해였고 한때 영화관 가운데 유일하게 실업야구단을 보유할 정도로 성공한 극장이었다.

1999년 멀티플렉스 씨지브이(CGV)가 2호점을 인천 남동구에 14관 규모로 내자 20개에 달하던 인천의 단관 극장들은 지우개로 지우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애관극장만이 당시 극장을 팔라던 씨지브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되레 옆 건물을 사 5개 관으로 확장했다. 1972년 애관극장을 인수한 탁상덕 사장에 이어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시절 문 닫기 직전의 극장을 인수한 2세 탁경란 대표의 뚝심이 밀어붙인 다윗과 골리앗의 승부였다.

지난 20일 인천 애관극장에서 열린 윤기형 감독의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 출판기념회에서 포즈를 취한 윤기형 감독(오른쪽부터)과 탁경란 애관극장 대표, 김영호 도서출판 동연 대표. 김은형 기자

멀티플렉스의 압박을 이겨낸 애관극장도 코로나의 파고만은 당해낼 수 없었다. 1999년 애초 매물로 나왔을 때 애사모가 결성돼 매각을 막아냈지만, 코로나 여파로 결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2021년 극장은 다시 매물로 나왔다. 이때 인천 도시학 연구자인 이희환 박사(인천대 교수)를 중심으로 애사모는 인천시의 공공매입 촉구에 나섰다. “시에 요구해 10여 차례 토론회, 공청회를 거치면서 공공매입이 구체화 되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극장 쪽에서 제시한 금액과 시 쪽의 매입금액이 차이가 났지만 극장주가 양보하면서 계약서 사인만 남은 상황이 됐는데 담당 국장이 바뀌었어요. 원점으로 돌아온 거죠.” 출판기념회 전 만난 이 박사가 말했다.

“2021년 말 시가 내놓은 애관극장 가치평가 자료를 보면 건축사적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고 나와요. 1920년대 처음 지어졌을 때의 모습이 아니라는 건데 그럼 경복궁과 숭례문의 가치는 어떻게 유지가 되는 걸까요? 시가 원도심 재개발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매입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윤 감독이 덧붙였다.

한국전쟁으로 부서진 뒤 전쟁이 끝나고 같은 자리에 다시 지어진 애관극장 자료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기형 감독(오른쪽)과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대표 이희환 박사. 김은형 기자

지금의 애관극장은 1980년대 리모델링했지만 그 형태는 한국전쟁 때 포격으로 반파된 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지어졌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둥근 원형 가장자리에 2층부터 유리 벽면을 채우고 1층은 계단을 올린 형태다. 자료가 충분히 남아있지 않아도 현재의 타일과 장식 등을 없애면 1960년대 초의 모습은 그대로 남는다. 이것만으로도 원주시에서 공공 매입을 결정하고 진행됐다 지난해 허망하게 무너뜨린 원주아카데미극장보다 오랜 역사다. 원주아카데미가 사라지면서 문화유산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극장은 애관극장과 1935년 지어진 광주극장 두 곳만 남게 됐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탁경란 대표는 행사가 끝난 뒤 책을 낸 도서출판 동연 김영호 대표에게 감사인사를 하다 끝내 눈물이 터졌다. 탁 대표는 지금은 사무실로 쓰는, 온 가족이 살던 극장 안 조그만 살림집을 기자에게 보여주면서 “부산이나 다른 도시들은 없는 자원도 만들어서 영화제를 열고 영화의 도시로 홍보를 하는데 인천은 가지고 있는 100년 된 자산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며 “애관극장에 추억이 있는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활용됐으면 한다”고 했다.

유정복 시장 체제가 들어선 뒤 애관극장 공공매입은 답보상태다. 인천시는 지난해 제물포르네상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원도심 활성화 계획을 내놓고 애관극장 건너편,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에 초고층 타워, 인근 개항장에 대규모 공연장 설립 등을 추진 중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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