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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태규 | 토요판부장

법조팀에서 7년 정도 근무한 경력이 있다 보니 어느 법조인이 ‘문제적 인물’로 떠오를 때 “그 사람 아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하 한동훈)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그와 말을 섞어본 적이 없다. 2006~2007년쯤 대검찰청 기자단 회식 자리에서 멀찌감치 앉아 있는 모습을 본 게 전부다. 대검 간부가 그를 가리키며 “저 친구가 한동훈이에요. 머리가 좋은데 술을 한잔도 못 마셔요”라고 했다. 당시 검찰연구관이었던 그는 하얀 얼굴에 소년 같은 인상이었다.

그는 2016년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윤석열 수사팀장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에 보임돼 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했다. 국정농단 수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로도 이어졌다. 일련의 적폐청산 수사를 진행하면서 ‘서초동 편집국장’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는 동시에 언론도 길들이고 있다는 평가였다. ‘조국 사건’ 수사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사단’이 갈라선 이후인 2020년 1월, 한동훈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검사장 출신 법조인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한동훈은 인생을 게임이라고 생각해. 검사 일도 본인에게 게임이지. 그 게임에서 이겨야 하는 상대는 첫째가 대통령, 둘째가 삼성, 셋째가 대법원장. 이 셋을 모두 구속했어. 대단한 거지.”

웬만한 과오로는 잘못을 지적하기 쉽지 않은 거대 권력과의 맞짱을 즐긴다는 얘기였다. 없는 죄를 만들지 않는 한 검사로서 나쁘지 않은 태도일 수 있다. 이 법조인은 말을 이었다.

“한동훈이 넣는 영장은 웬만해선 기각 안 돼.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정황을 세밀하게 끼워넣어. 판사의 감정을 공략하는 거지. 그런 재주가 기획 업무에선 도움이 되지만 수사에선 독이야.”

중앙일보는 한동훈을 ‘조선제일검’이라며 상찬했지만 과거 한동훈은 검찰 내부에서 특수통보단 기획통(법무·검찰 행정 업무 담당)으로 분류됐다. 기획통은 특수통보다는 시야가 넓고 정무감각도 있는 편이다. ‘한동훈 구원 등판론’에 야권에서 나온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이라는 반응이 섣부르게 보였던 이유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으로서 바닥을 보였다. ‘이종섭 대사’ 건이 결정적이었다. 윤 대통령이 해병대 순직 사건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를 올해 3월4일 이례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했을 때 평생 검사만 했던 한동훈이 불길함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이상한 일이다. 도피·도주 논란에 불이 붙어도 그는 “호주라는 나라가 국방 관련 외교 사안이 많은 나라로 알고 있다”(3월11일)며 넘어갔다. 3월15일에 가서야 “(이 대사가) 신속하게 들어와서 신속하게 정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가 15%포인트 빠지는 격변이 일어난 뒤였다. 이 대사가 귀국했지만 아직 조사 계획이 없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향해선 “정치질을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어떤 수사기관도 피의자의 사정을 봐주려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조사를 벌이진 않는다. 돈봉투 사건 피의자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게 지난해 6월이다.

강제수사권을 가진 검사와 피의자 사이에 ‘무기대등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면 위 티끌만한 정보를 가지고 기사를 써야 하는 법조 기자도 마찬가지다. 한동훈은 그동안 극심한 ‘정보 비대칭성’을 십분 활용해 거대한 게임에서 항상 승리했다. 하지만 정치는 투명한 영역이다.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량급 대사”라는 설명보다는 수사 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라는 ‘팩트’가 명확하다. 인생을 게임으로 본다는 분석에 터잡았을 때 한동훈이 치른 이번 총선 게임의 상대는 국민 아니었을까. 뭐라고 변명하든 국민들은 보이는 대로 느끼고 상식선에서 판단한다. 그리고 이를 뒤집을 만한 은밀한 정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대칭 정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잃은 한동훈은 그저 경험 없는 초보였을 뿐이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내려놓으며 정치 복귀 가능성을 열어둔 그는 4월20일 페이스북에 “정교해지기 위해 시간을 가지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고 적었다. 한동훈은 다음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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