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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앞서 참석자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내년도 의대 정원 조정을 허용했지만, 의사들은 ‘원점 재검토’를 외치고 있다. 정부가 강경책과 유화책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빌미를 준 탓도 있지만, 의-정 갈등의 장기화로 환자 건강에 ‘빨간불’이 켜져 의료계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1일 의사 단체 입장과 보건복지부 설명을 종합하면,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물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등 의대 교수 단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 등 의사 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회의를 열어,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 수정에도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병원 복귀 등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의협 비대위는 이번주 첫 회의가 예정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구성과 역할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돼 있지 못한 특위로 알고 있다”며 “제대로 (의사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위원회라면 참여하는 게 의미 없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환자 단체, 시민사회계, 의료계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료개혁특위가 아닌 의사와 정부만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공의들은 정부가 내린 복귀 명령을 무력화하기 위한 소송 등을 계획하며 사태 해결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대전협은 이번 업무개시명령과 진료유지명령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계가 기존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정부를 향한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의대 교수 일부는 당장 25일 병원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의대 교수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한달이 지난 시점부터 효력이 발생해 이탈이 가능하다. 폐암·폐이식 수술 전문가인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4월 말에 의대생 집단 유급이 현실화하면 전공의들은 이들과 연대해 거의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나도 애초 5월10일 사직할 계획이었지만 (의료 여건이 개선될) 희망이 없다고 보고 사직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흉부외과·심장내과·신경외과 등 이른바 ‘바이털’(필수의료) 진료과 교수들의 사직 의사가 특히 강한 편”이라고 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정부 책임도 크다. 18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개혁을 흔들림 없이 완수하겠다”고 밝혔다가, 다음날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증원분 조정을 허용했다. 정부가 줄곧 강조한 ‘연 2천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스스로 훼손했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린다는 의료개혁 명분도 흔들리게 됐다. 정원이 200명까지 늘어난 비수도권 국립대를 중심으로 증원분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서다. 증원분을 50%에서 100%까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이들이 충북대 등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 6명이다. 반면 서울 대형병원을 수련병원·협력병원으로 둔 사립대 상당수는 증원분을 유지할 전망이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로선 전공의를 대거 복귀시키는 실리도 챙기지 못하고, 지역의료 개선이란 명분도 잃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의료계도 사태 해결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의료 공백이 2개월 넘게 장기화되며 환자 피해 우려가 불어나는데다, 정부가 물러선 상황에서 ‘증원 계획 폐기’만 주장해선 국민들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원이 아닌 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며 “이제 정부나 의료계 모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수술만큼은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언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에서 의료계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의료계는 더욱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르면 이번주 만날 예정인 가운데 의-정 갈등을 해결할 해법이 나올지 관심을 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정부가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숫자에 매몰됐다’는 야당 일각의 비판도 약해질 전망”이라며 “여야가 한목소리로 증원을 지지하고 전공의 복귀를 촉구하면 의사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서울아산병원 등 울산대 의대 부속·협력병원장들은 이날 “최근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한 문제가 대학의 자율 결정 등 유연하게 전환됨에 따라 의과대학 교육과 병원의 진료가 전환점을 마련할 계기”라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있지만, 우리 앞에 있는 환자 불편과 진료 공백을 지혜롭게 풀어나가기 위해 진료와 교육의 현장에 복귀해달라”고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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