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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올해 꽃소식은 한걸음씩 늦나 싶더니만 4월 시작과 더불어 방금 튀겨낸 팝콘처럼 벚꽃들이 터지고 옆집의 앵두나무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닥지닥지 꽃이 피어났다. 개나리, 목련, 조팝꽃이 한꺼번에 흐드러지더니만 꽃 지고 어느새 새 잎새들의 연둣빛이, 초록의 농담이 싱그럽다. 그렇게 꽃 좋아하시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지 어느덧 넉달이 되어간다. 나는 매일 이른 새벽 주인 없는 빈 방에 불을 켰다가 저녁 일과 마치고 자러 갈 때 불을 끈다. 6월에 증손주들이 올 때까지 그대로 두고 추억할만한 거리를 갖고 싶어하면 가지라 하고 나서 다시금 정리할 예정이다. 아직도 엄마의 화장대 위엔 증손주들과 손주들 사진이 가지런하다. 주말엔 어려운 걸음과 마음으로 장례 때 함께해 준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친구들의 위로에 또 붉어진 눈시울…. “그래! 2년 가더라. … 아냐, 2년이 뭐야? 두고두고 울컥하지. 어떤 땐 엄마 생각을 안해도 근거 없이 눈물이 쏟아져. 그래서 저번에 비 엄청 쏟아지던 날, 우산 쓰고 청계천변 걸으면서 대성통곡을 했어. 실컷 울고 나니 좀 낫더라.”

헤어지기 아쉬워 커피 앞에 놓고 쓰잘데기 없는 얘기들을 이어가는데 (쓸데 없는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는 사이가 찐친이라 생각함) 사람마다 아끼는 게 달라서, 자식들 공부바라지엔 좋다는 걸 다 해주었지만 휴지는 벌벌 떨며 아까워서 반 갈라 쓴다는 남편 얘기, 주차비가 쓸데 없는 지출 같아 빈자리 날 때까지 몇 바퀴씩 빙빙 돈다든지(기름값은 어쩌려고?), 예쁜 선물 포장지는 잘 벗기고 테이프도 조심스레 떼어 잘 보관한다면서 고운 종이들이 그렇게 아깝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무엇을 아까워하는지 생각해봤다. 날 풀리면서 뒷 베란다에 보관한 국과 나물반찬이 하루 상관으로 홀랑 쉬었는데 제대로 보관 못해 쉬면 진짜 아깝다. 책도 잘 못버린다. 이상하게 활자로 된 물건에 애착이 강해 그냥 다 쌓아둔다.

대학로엔 젊음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함께 그 사이를 걸으며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지지난주만 해도 벚꽃 진 자리에 꽃눈 내려 길가에 쌓여있는 게 고왔다. 꽃구경 나온 이들의 주차 때문에 동네 길이 빼곡했다. 아이랑 강아지랑 젊은 부부가, 나이 든 여성 서넛이서, 봄기운 가득한 햇살을 즐기며 산책을 한다. 벚꽃 그늘 아래에선 모두의 얼굴이 화사했다(마치 티브이 녹화 때 쓰는 반사판처럼 분홍물감 한방울 떨군 형광등 빛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그늘로 오렴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의 꽃말은 나라마다 다르고 중국, 일본은 아름다움, 겸양 등인데 유럽에선 삶의 덧없음과 일시적인 아름다움이란 꽃말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찬란하던 벚꽃 구름은 어느덧 사라지고 벚나무 잎들이 아우성인 지금, 이 봄은 ‘여성시대’의 신춘편지쇼의 계절. 올해 글제는 ‘여행’. 신춘문예가 저리 갈 정도의 열기다. 삶은 여행이며 많은 이들이 세상 떠난 부모, 조부모에 대한 얘기를 써보내셨다. 50여편의 묵직한 흑백 단편영화를 이틀새 집중해서 관람한 것처럼 두통이 제법이었다. 날아갈 듯 가볍고 밝은 내용은 거의 없었다.

신춘편지쇼 심사를 마치고 엄마의 옷장 안에 선반을 3개 매어 여행 가방들을 정리했다. 다 정리하고 보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로 1박 2일 내지는 3박 4일까지 거뜬히 떠날 수 있는 여행장비(?)들이 작은 가게 하나 차리고도 남을 정도다. 여행의 결론은 짐싸기. 완벽한 짐꾸리기가 목표인데 늘 성에 안찬다. 떠나는 그 순간 왜 편한 집 놔두고 어딜 또 가냐? 싶지만 막상 도착하면 생각 밖으로 처음부터 여행지에서 쭉 살아온 것 같다.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큼직한 비닐백에 필요한 것들을 툭툭 던져 모은다. 떠나기 전날 솎아내고 정리해서 짐을 꾸린다. 가져간 옷, 물건 남김 없이 다 입고 쓰는 게 목표. 도대체 완벽한 짐싸기는 언제나 가능할까?

오래전 사주 보는 이가 연예인들에게 많은 무슨무슨 살이 있는데 난 그게 없는 대신 역마살이 있어 그걸로 가수가 됐나보다고 했다. 아니 매일 스튜디오에 앉아 생방송만 하는 내가 무슨 역마살이 있어 떠돌아다니겠느냐고요? 하니까 자네가 한자리에 가만 있어도 사람들이 움직여가며 듣잖아? 하기에 대단한 해석이라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늘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꾸는 건 우리 시간이 옹골지게 자기 것이 못되기 때문인가? 프로그램에서 찾으면 달려가서 스탠바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인가?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떠남을 선망하더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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