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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2021년 2월 서울의 한 재활용 선별시설에서 직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익명 | 재활용선별노동자

2008년 12월 말, 나는 이웃으로부터 폐기물처리장에 있는 재활용선별장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루 8시간 주 6일 근무에 급여는 120만원. 2009년 1월2일 첫 출근을 했다. 컨베이어 벨트로 지나가는 재활용 폐기물 가운데, 정해진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캔을 선별해내는 일을 맡았다.

손 씻을 수도시설이 없다고 했다

첫날 긴장한 채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손을 씻어야 해 세면장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는데, 수도 시설이 없다고 했다. 화장실도 재래식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점심 식사 후에는 따로 앉아 쉴 곳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내 차에서 점심시간을 보내야 했다. 난감했지만, 차츰 개선되겠지, 생각했다. 그땐 몰랐다. 이런 상황이 1년이 지나도 변함없으리란 것을. 오후 1시,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6시 퇴근까지는 잠시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했다. 중간에 화장실 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서서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선별작업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선별할 물건을 놓친다.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생각지도 못한 온갖 생활 쓰레기들을 직접 만져가며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섞여 들어오는 각종 음식물 쓰레기에 반려동물 사체, 깨진 유리병, 심지어는 피 묻은 의료용 거즈나 주삿바늘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져가며 일한다. 자주 다치고, 무릎이나 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 한두 가지 생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됐다.

시간이 가고 일이 익숙해질 즈음 여름이 왔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벌레가 들끓기 시작하고 악취가 심해졌다. 그것도 익숙해지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선별작업 노동자 2명이 해고되었다. 한 사람은 재활용품을 집에 갖고 간다고, 또 한 사람은 유언비어를 유포해서라고 했다. 작업자들은 이제 해고의 두려움까지 생겼다.

문자로 받은 해고 통보

그해 12월이 되자 재계약이란 말이 나왔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일해왔던 나는 당연히 재계약이 될 줄 알았다. 12월31일 퇴근 시간이 되자 회사 대표가 말했다. 재계약 여부는 개인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줄 것이라고. 퇴근 후 ‘재계약 불가’라는 통보 문자를 받았다. 영문도 모르고 해고된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2010년 1월2일, 회사로 쫓아가 재계약이 안 된 이유를 물었고, 대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알고 있는 막연한 지식으로 회사 측이 사전 통보 없이 해고했으니 3개월치 급여를 내놓으라고 했다. 대표는 정당한 계약 해지여서 그럴 의무가 없다고 했다. 허탈하고 분한 마음에 시청과 고용노동청을 찾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회사 측과 같았다. 정당한 계약 해지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고용노동청이란 말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보던 남편이 노동조합에 문의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노동조합에 가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당장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함께 해고된 동료 4명과 함께 복직 투쟁을 했다. 그렇게 75일간의 투쟁 끝에 우리는 2010년 3월25일 복직 통보를 받았다. 해고 뒤 약 3개월 만이었다. 복직하고 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수도도 놓여 있고, 비록 비닐하우스지만 휴게실도 생겼다. 이후 여러 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조합원이 늘면서 단체교섭도 시작했다. 휴식 시간과 휴가도 확보했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한 투쟁

2015년 재활용 선별시설에 새 공장이 세워졌다.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고 했다. 자동화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이 닿지 않을 순 없다. 이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선작업과 후작업은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화라는 말이 그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려 버렸고, 매번 바뀌는 새로운 업체들은 우리 임금을 깎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투쟁과 복직의 연속, 그 투쟁들은 더 나은 조건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생존의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지금도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한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언 15년이 지났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변하지 않은 건 재활용 선별작업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의 노동으로 선별된 재활용 쓰레기는 가치 있는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지만, 우리의 노동은 여전히 매립장에 쓰레기들과 함께 매몰되고 있을 뿐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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