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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기복 성 상품화 역사]
쫄쫄이부터 치마바지까지 논란
불편하지만 '관객 흥미'를 위해?
"기능 앞세워 성차별 해소해야"
11일 나이키가 공개한 2024 파리올림픽 미국 육상대표팀의 경기복. 여성 경기복만 노출이 과해 성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시티우스 인스타그램 캡처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육상 선수들의 경기복이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남성 경기복은 허벅지를 덮는 반바지인 반면 여성은 사타구니까지 드러나는 수영복 형태였기 때문이다. 대중은 "왜 여자만 이런 복장이냐"며 비판을 쏟아냈다.

스포츠 선수 경기복을 둘러싼 성차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성과 달리 여성 경기복은 몸매가 부각되고 이로 인해 경기력을 저하시킨다는 논란은 국내외에서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 선수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경기복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쫄쫄이, 치마바지… 여성 경기복 수난시대

2000년 당시 여자농구 선수였던 정은순씨가 밀착형 경기복을 입고 경기를 뛰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에서 근대스포츠 여성 경기복이 등장한 건 1913년. 2013년 발표된 최영금 한국체육대학교 박사 논문에 따르면, 당시 이화학당에서 여자농구 경기를 처음 실시하면서 경기복이 처음 선보였다. 선수들은 불편한 치마 대신 흰 블라우스와 검은 블루머(일본식 체육복 하의)를 입었다. 1930년대에는 짧은 반바지 경기복이 도입됐고, 1990년대 초에는 반팔과 반바지 차림의 NBA 형식 경기복이 나왔다. 이때만 해도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복은 활동 편의성이 중요했다. 남성과 여성 경기복도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1997년 여자농구에서 일명 ‘쫄쫄이’ 경기복이 나오면서 성적 대상화 논란이 불붙었다. 위아래 일체형으로 밀착된 형태로, 경기 중 옷자락을 잡아끄는 반칙을 방지하기 위한 디자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선수들의 몸매가 지나치게 드러났다. 성차별 논란으로 2000년 밀착형 경기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자프로배구 인천흥국생명은 201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치마바지 형태의 유니폼을 도입했다. 당시 흥국생명은 "강인하고 세련된 여성미를 표현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여자배구 복장도 도마에 올랐다. 1999년 대한배구협회는 슈퍼리그 개막 당시 '어깨와 엉덩이 라인이 드러나는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내놨다가 선수들의 강한 반발로 철회했다. 여자프로배구단을 운영하는 흥국생명은 짧은 바지 위에 치마를 덧댄 치마바지형 경기복을 2013년 도입했다가 여성성을 강조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1년 만에 바지 경기복으로 돌아갔다.

성차별적 복장 규정도 논란이 됐다. 2019~2020년 시즌 대한배구연맹의 여자배구 하의 복장 규정에는 '하의 기장이 12㎝ 이내로 타이트해야 한다' '반바지거나 골반 쪽으로 파인 삼각형 모양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헐렁하거나 느슨하지 않아야 한다'가 전부인 남자 복장 규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2020년 무렵 해당 규정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다음 시즌 남성 복장 규정과 동일하게 수정됐다. 다만 여자배구 바지 길이는 여전히 남자배구 바지보다 짧다.

여성 선수 몸을 눈요기로… “남성 권력 때문”

1일 인천 부평구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2023-2024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거둔 현대건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여성 선수들은 경기복에 따른 불편을 토로해왔다. 피겨스케이트, 골프, 테니스 등의 종목은 여성 선수들의 치마 착용을 당연시하고 있다. 배구선수 출신 한유미 해설위원은 2020년 E채널 '노는언니'에 출연해 "경기복이 너무 짧아서 (스틱형 생리대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다 보인다"고 고충을 전했다. 여자배구 박현주 선수도 비슷한 시기 유튜브 '코보티비'에 나와 "여자배구 선수라서 힘든 점은?"이라는 질문에 "바지가 너무 짧다"고 밝혔다.

여성 경기복은 성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됐다. 김정효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연구교수는 "근대스포츠는 남성에게 신체적 탁월성을 요구하는 반면 여성에게는 성적 매력도 함께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 선수 몸을 눈요기로 삼는 행태는 미디어의 중심 권력이 여전히 남성에게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차별이 당장 쉽게 사라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2011년 세계배드민턴연맹은 여성 경기복을 미니스커트형으로 정하면서 그 이유로 "관객들이 배드민턴 경기에 다시 흥미를 갖게 하려면 선수들이 복장을 갖춰야 한다"고 발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에세이 '운동하는 여자' 저자인 양민영 작가는 "물론 여성 몸을 부각한 경기복이 일시적으로 화제를 일으킬 수는 있다"면서도 "선수가 경기력에 집중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아닌 이상 질적·장기적으로 해당 종목에 좋은 변화를 가져올 리 없다"고 비판했다.

"육체 아닌 경기력 도움 되는 복장 도입해야"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지소연(왼쪽)과 김혜리가 지난해 4월 3일 서울 광진구 파이팩토리 스튜디오에서 열린 나이키 우먼 2023 미디어 행사에서 새로운 유니폼을 선보이고 있다. 뉴스1


여성 선수들은 성차별적 경기복에 반기를 들고 있다. 2021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 선수단은 비키니 착용 의무 규정에 항의하며 반바지를 입고 출전해 벌금을 냈다. 하지만 선수단에 대한 지지가 쏟아지자 국제핸드볼연맹은 여성 선수도 반바지를 입도록 규정을 고쳤다. 같은 해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독일 여자체조 대표팀이 "여성 선수 성적 대상화를 끝내자"는 취지로 기존 원피스 수영복 모양 레오타드를 거부, 전신을 덮는 경기복을 입고 출전해 박수를 받았다.

여성 활동 편의를 돕는 경기복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여성 전용 경기복이 도입됐다. 여성 6만8,000여 명의 신체를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봉제선과 허리 밴드 등 여성이 편하도록 디자인했다. 바지는 월경혈이 잘 묻지 않는 특수 소재를 쓰고 색깔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꿨다.

전문가들은 경기력을 높일 수 있는 여성 경기복을 도입해 성차별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짚었다. 양 작가는 "불편한 경기복은 여성 선수가 남성에 비해 기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며 "여성 선수 역량을 높이는 경기복을 고안해 편견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선정적인 경기복은 관중의 시선을 선수의 경기력이 아닌 여성의 육체에 고정시킨다"며 "탁월한 경기력은 성별과 관련이 없다는 사회적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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