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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장애 딸 위해 요식업 그만두고 자립지원센터 차린 전명희씨
"뭐든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다른 부모들에게도 권하고파"


전명희(56·오른쪽부터) 강릉시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장이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최아영(26)씨, 자신의 딸 김유리(35)씨와 함께 공예품을 만드는 모습. [강릉시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릉=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부모로서 지켜보니 잘 입히고 잘 먹이는 것보다도 홀로 살게 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런 걸 가르쳐 주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너무 잘해요."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딸 김유리(35)씨를 둔 전명희(56)씨는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요식업 경력 24년의 사장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릉시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장으로서 딸 유리씨뿐만 아니라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홀로서기를 돕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보통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보통 아이들보다 느리다고만 생각하지, 장애가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 그러면 장애인 인증을 못 받아서 돌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상처가 더 커지는 거죠."

'집에 갇혀만 있으면 변하는 게 없다'는 생각에 12년을 운영한 식당 간판을 과감히 내리고 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장의 길을 택하면서 그의 인생도, 유리씨를 비롯한 중증 장애인들의 인생도 180도 바뀌었다.

"그냥 데리고 다니면서 종일 옆에만 붙어 있으면, 그건 유리 인생이 아닌 거예요. 엄마 삶에 끌어들여서 사는 것일 뿐이죠. 그래서 유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센터를 만들었어요."

전씨는 횟집 12년, 한식집 12년을 운영하며 모은 돈을 센터를 차리는 데 쏟아부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는 중증 지적장애인 김유리씨
[촬영 강태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게 중증 지적장애인들을 돕겠다고 결심하고 나섰지만, 그들의 독립이 독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공간'이 필요했다.

특히 일자리랍시고 우두커니 앉아서 시간만 보내는 게 아닌 볼펜 한 자루를 만들더라도 스스로 일을 해서 대가를 받는 번듯한 직장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장애인을 위한 임대주택이 있지만 어느 세월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현실.

스스로 집세도 내고, 식비도 감당하고, 생활비도 해결할 수 있는 번듯한 직장, 60세가 되면 정년퇴직하듯이 안정적으로 직업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일터가 있어야 했다.

그런 간절함 속에 탄생한 게 강릉 중앙시장에 터를 잡은 기념품 가게 '월화역 대합실'이다.

각종 스티커와 엽서, 자석, 반지, 팔찌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 모두 장애인들이 만들어 포장하고, 진열하고, 판매한다.

어느새 3호점까지 늘어난 기념품 가게에서 딸 유리씨는 물론 센터에서 가장 먼저 자립을 도운 최아영(26)씨 등 10명 남짓한 장애인들이 손수 일터를 가꾸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을 해야만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계속 교육했어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 잘 알아요.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배제해서 안 되고, 뭐든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해요."

일자리가 생겼다고 해서 장애인들의 홀로서기가 쉬운 건 아니었다.

4년째 자립생활 중인 최아영씨
[촬영 강태현]


아영씨는 처음에 버스도 잘 타지 못했다. 한 달간 타고 내리기를 반복한 끝에야 대중교통에 익숙해졌다.

음식도 되도록 직접 해 먹는 데 익숙해지도록 교육, 또 교육했다. 빨래에 청소까지 온 집안일을 터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인내와 믿음으로 빚어낸 아영씨의 '평범한 삶'은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다.

전씨는 아영씨에 이어 유리씨 등 현재까지 총 5명을 자립시키거나 자립 준비를 돕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느 날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왈칵 눈물을 쏟은 적도 있다.

"힘들다"는 고충 따위가 아닌 "직장을 갖고 싶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였다.

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유리씨가 또래 선생님에게 '나는 이성에 관심이 있어서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다', '엄마 몰래 휴대전화로 멜로 드라마도 본다'고 털어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뜨끔하면서도 딸의 인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씨의 목표는 중증 지적장애인들이 가정까지 꾸리지는 못하더라도, 직장 생활을 하며 홀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는 "사실 아영이도, 유리도 홀로서기를 잘 못할 줄 알았다"며 "너무 잘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부모들한테도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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