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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뇌종양 등 수술치료 급한데
의사없어 장기 대기·예약 취소
환자들 “불안감에 눈물만 흘려”
정부의 의대정원 2천명 확대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 등이 의료현장을 떠난 지 두 달이 된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서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그때 병원에 전공의들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더 빨리 치료받을 수 있었더라면….”

지난달 남편을 잃은 최희숙(65)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만약’을 떠올린다. 최씨 남편은 2020년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했다. 3년 뒤 폐암이 재발해 올해 3월까지 대구에서 서울을 오가며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의-정 갈등이 본격화한 2월부턴 최씨 부부는 항상 살얼음판을 걸었다. “‘다음 치료는 무사히 받을 수 있을까’, ‘전공의들이 없다는데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죠.”

3월6일 최씨 남편은 상태가 악화해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고, 9일 밤부터는 기침도 심해져 피 검사 뒤 더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권고를 받았다. 최씨는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문의했지만 “전공의가 없어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 결국 남편은 사설 구급차를 타고 삼성서울병원에 10일 입원해 코로나19 판정을 받고, 나흘 뒤 숨졌다. 최씨는 “폐암 환자가 코로나에 걸리면 위험하다지만, 계속 ‘이번 (전공의 이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가족은 “애만 타”

2월19일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면서 의료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공의 집단행동 두달을 하루 앞둔 18일 의-정 갈등은 그대로다. 대신 환자와 보호자들은 기약 없는 수술과 치료에 답답함만 호소했다.

지난 2월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2차 뇌종양 수술을 받으려던 40대 여성 ㄱ씨는 예정일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병원으로부터 취소 통보를 받았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서였다. 그는 배에 영양분 공급을 위한 튜브를 꽂은 채 수술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몸이 야위어가고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그를 보며 가족들은 상태가 나빠질까봐 노심초사했다.

간암으로 수년째 비수도권 대학병원에서 치료 중인 70대 남성 ㄴ씨는 이달 초 간암 치료를 위한 시술(색전술)을 받아야 한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동시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술 예약은 잡기 어렵다는 설명도 들었다. ㄴ씨는 “의사가 ‘다음에 오면 저는 사직하고 없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해 막막함에 눈물만 흘렸다”고 전했다.

의사들도 “앞으로가 더 걱정”

의료진도 불안함을 체감한다. 윤현조 전북대병원 유방갑상선외과 교수는 “2월20일 이후 마취통증의학과 상황이 여의치 않아 수술을 기존 대비 3분의 1로 줄였고, 4월부턴 신규 환자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 암에 대해서도 급하다고 설명하면서도 수술 날짜는 못 잡아주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암을 진단받는 순간부터 환자들의 심정은 불안함의 연속인데, 수술 날짜까지 잡히지 않으니 환자들이 더 버티기 힘들어한다”며 “울다가 나가는 환자가 많고, 저도 ‘죄송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도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등의 기사만 나와도 불안해하는 보호자들의 전화가 빗발친다”며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 장시간 노동을 하며 버티고 있는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 한 수도권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전공의 이탈 이후 일주일에 9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며 “항암치료를 하는 혈액종양내과가 있는 병원은 대부분 전공의들이 있던 곳이어서, 환자를 보낼 수 있는 병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너무 많이 보고 있어 환자들에게도 위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집단 사직에 동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겠다는 교수들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항암치료 일정이 너무 늦춰지면 환자 상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응급실은 “역량 축소”

응급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전공의 집단행동 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줄어든 면도 있지만, 응급 환자 대응 역량도 줄었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최근 목에서 피를 토하는 환자가 119구급차에 실려 경남 함양군에서부터 온 적이 있다. 경남과 대구의 여러 상급종합병원에 전화했지만 갈 곳을 찾지 못해 멀리 온 것인데, 전공의 이탈로 응급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 찾기가 기존보다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주요 병원 병상 가동률이 50%에 미치지 못하기 시작하는 등 병원의 진료 역량이 전공의 이탈 이전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응급실 간 환자 전원 연결망을 서둘러 마련했지만, 당직 의사를 구하지 못해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4∼5월 차례로 열려던 ‘광역응급의료상황실’ 4곳을 3월4일 긴급상황실 형태로 일찍 열어 수도권·충청권·전라권·경상권 등 4개 권역 응급실 간 전원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 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와 직결된 119 구급대 병원 선정 지원 업무는 못 하고 있다. 당직을 서며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줄 외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필요한데, 전공의 사직으로 이곳에서 일할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다.

응급 진료를 받지 못해 죽음도 발생했다. 3월31일 경남 김해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한 60대 여성은 인근 병원 응급실을 찾지 못해 부산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수술을 기다리다 사망했다. 같은 날 충북 보은에서 도랑에 빠진 33개월 아기도 상급종합병원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숨졌다. 죽음 앞에 복지부와 의료계는 나란히 애도를 표하면서도 “의료 공백으로 인한 사망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다. 이날도 정부는 “의료개혁을 흔들림 없이 완수하겠다”(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고, 의료계는 “원전 재검토 선언을”(박단 전공의 대표)이라며 기존 입장만을 반복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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