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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기념일을 하루 앞둔 18일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4·19 민주묘지를 찾은 유족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문정 | 4·19혁명 희생자 유족

우리는 6·25와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 엄청난 수의 젊은 주검을 국립묘지에 안치했다. 그들로 인해 지금 우리는 여기 이렇게 안전을 누리며 편안히 사는 것이다. 국립묘지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들어가서는 안 되는 두 사람이 지금 이곳에 묻혀있다. 바로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소장이다. 이승만 박사는 1960년 3월15일 부정 선거를 밀어붙여 많은 학생을 희생시켰고, 박정희 소장은 학생들의 피로 세운 자유민주주의를 군홧발로 짓밟은 장본인이니 이곳에 묻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4·19혁명은 마산에서 먼저 일어났다. 부정 선거 항의 시위에 참가한 어린 남학생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체로 물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것을 보고 경악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분노의 함성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이승만 박사가 두 손을 들고 온 국민에게 사죄했더라면 아마 우리 국민은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부정 선거의 역풍이 걷잡을 수 없게 전국으로 번지면서 서울 장안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부정 선거 타도”를 외치며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로 쏟아진 학생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총을 시위대를 향해 겨누었고,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졌다. 결국 186명이란 학생들의 고귀한 피를 보고서야 이승만의 하야 방송을 끌어낸 것이다.

나는 4·19 때 동생을 잃은, 몇 안 남은 유족 중 한 사람이다.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청천벽력이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간 아들이 죽음으로 돌아온 그 애통함으로 나날을 보내시던 부모님들도 이제 다 돌아가셨고 몇 분 남지 않은 형제자매들마저 연로해 묘소에 참배하러 오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4월19일이 되면 동생의 학교 선배나 후배들, 같이 시위하던 동료들이 와서 꽃을 놓고 가거나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살아 있었구나, 있어 주어 고맙고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마워서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이젠 우렁찬 함성도 검은 교복들의 물결도 아주 멀리 아득하게 느껴져 긴 세월을 실감한다.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소장도 자신이 묻힌 그 자리가 그들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몇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나 자신도 유족이면서 아무 말 안 한 것이 부끄러워, 동생은 물론 4·19 영령들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의 파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분명하게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 학생에게 총을 쏜 대통령에게 기념관을 만들어주자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박정희 소장은 남북으로 갈라져 그렇지 않아도 좁은 땅덩어리를 동서로 갈라놓으며 지역 갈등을 조장한 인물이다. 선량한 국민을 좌우로 갈라 덫을 씌워 고문하고 죽이고 한 것 또한 박정희 소장이 아니었던가. 그러면서 본인은 일제강점기 때는 친일파로, 건국 초기에는 공산당으로, 4·19혁명 직후에는 학생들이 피로써 일구어 놓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군홧발로 짓밟았다. 이런 사실을 온 국민에게 사죄하게 하는 차원에서라도 그들의 파묘를 결정해야 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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