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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우 정치에디터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에서 지고 나면 지는 이유 100가지가 만들어지지만, 이번 4·10 총선만큼은 예외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여당의 기록적 참패 원인으로 ‘용산’을 지목한다. 선거 다음날 한 보수지 사설에선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리더십을 콕 집어 거론했다. 외신들도 윤석열 정부의 고물가 대응과 일방통행식 통치를 패인으로 들었다.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은 그래서 ‘돌려까기’처럼 들린다.

정작 당사자가 총선 후 엿새 만에 내놓은 입장은 이세계(異世界)급이다. TV 생중계된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국정 방향은 옳지만 국민이 체감할 변화는 미흡했다’로 요약된다. 오만과 불통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여당이 이 정도로 참패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내각제였으면 정권이 바뀌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말이 더 가관이다. “국정 방향은 지난 대선을 통해 응축된 국민의 총체적인 의견이라 선거 때문에 바꾸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만큼 확실한 민의가 어디 있나. 총선 민심을 오독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그에게 던져진 질문을 외면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디올백 수수 논란,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4시간이 지나 윤 대통령이 비공개회의에서 “국민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무회의나 민생토론회를 TV 생중계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던 분이 이번에는 왜 카메라 앞에서 입을 다무나.

윤 대통령이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다. 집권 2년 만에 맞은 총선 참패로 조기 레임덕 가능성이 커졌다. 윤 대통령 스스로 말했던 “식물 대통령”이 어른거린다. 문제는 이런 상황의 9할은 대통령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막바지까지 ‘관권선거’ 논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각종 감세 방안과 개발 약속을 쏟아냈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면서 막대한 돈을 풀겠다는 부조리는 정부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렸을 뿐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김 여사 관련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도피 출국’ 논란, ‘대파 875원’ 논란 등에 오만과 무능으로 대응하면서 정권심판론을 자초했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정부는 야당 선거운동을 중단하라”(개혁신당)는 논평이 나왔을까.

패배를 딛고 일어서려면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또 쉬운 길로 가려 한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기 싫으니 ‘정신 승리’로 가는 길이다. ‘나는 옳은데 국민이 못 느끼는 거다’ ‘어쨌든 탄핵 저지선은 지켰다’ ‘22대 국회는 21대 국회 의석 분포의 반복일 뿐이다’…. 해서 윤 대통령이 소통 시늉을 하다가 이제껏 그랬듯 시행령·거부권 통치를 되풀이하지 말란 법은 없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때도 “국민은 항상 옳다”는 추상적인 말만 하면서 쇄신은 시늉으로만 그쳤던 그다.

‘데드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코너에 몰렸으니 자기방어에 몰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분명해진 건 윤 대통령이 이미 심리적·정치적 탄핵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정권심판론이 그나마 탄핵 저지선 직전에 멈춘 건 변화의 기회를 준 것이지, 앞선 2년의 오만과 독선, 불통과 무능을 반복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대로 정신 승리의 길로 가면 훨씬 더 참혹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야권의 압박에 더해 여권 내부에서도 원심력이 강해질 것이다. 여당이 살려면 대통령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가 언제 터져나올지 모른다. 유승민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과는 용기”라고 썼다.

<식스 센스>는 역대급 반전 결말로 충격을 주는 영화다. ‘죽은 사람이 보인다’는 소년을 상담하던 정신과 의사가 결국 자신이 유령이었음을 알게 된다.

패배를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여당의 참패는 자기변혁을 위한 충격요법이어야 한다. 그런데 성찰 없는 일방향 메시지, 비선개입설 등 혼란만 거듭하고 진척은 없는 인적 쇄신 등 ‘패배 이후’의 용산을 보면 그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유감이다. 지금이 방향타를 돌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그것이 국민이 5년간 위임한 대통령의 의무를 그나마 다하는 것이다. 또 거부할 경우 자신만 깨닫지 못한 채 유령처럼 떠돌 수도 있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김진우 정치에디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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