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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경북 의성에서 20대 청년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겁니다. 청년은 결국 3월 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SNS에 남긴 유서에는 '청년 귀촌', 그 후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이면이 담겼습니다. KBS 대구방송총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농촌 생활에 익숙지 않은 청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문제가 없는지 살펴봅니다.

■ 귀농·귀촌 1번지의 '장밋빛 허상'

경북 의성군은 전국 청년 귀농·귀촌 1번지로 꼽힙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청년 인구 정책을 활발하게 펼친 결과 2020년부터 3년 연속 '귀농인 유치 전국 1위'라는 성과를 얻었고 전국 곳곳에서 귀농·귀촌 정책 우수 지자체로 지목됐습니다.

의성군이 추진하고 있는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청년 농업인 스마트팜 조성 사업'입니다.

미래 기술인 스마트팜을 활용하면, 병충해 등 변수를 줄일 수 있고 적은 인력으로도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들이 도전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겁니다.

의성군은 2019년부터 매년 교육생을 선발해 1년여간 스마트팜 창업 교육과 경영 실습, 실제 창업까지 지원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주수/ 의성군수(2021년 11월)
"청년유입정책의 일환으로 스마트팜 실험장뿐만 아니라 거기서 공부한 청년들을 현장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지원해주는…"

그런데 취재진이 만난 사업 참여 청년들은 말이 달랐습니다. '장밋빛 허상'이라는 겁니다.

스마트팜 사업의 핵심은 농사를 지을 땅과 시설을 마련하는 건데 여기에 필요한 최소 수억 원의 비용은 개인 담보 대출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지자체 지원은 일부에 그친 탓에 담보 능력이 부족한 청년들은 결국 시간만 버린 꼴이 됐다고 하소연합니다.

한때 의성에 귀농했던 이 청년은 이제 농업 자체를 포기했다.

의성군 사업 포기 청년
"초기에 너무 큰 돈이 들어가다 보니까 솔직히 부담이 많이 돼요. 빚 갚아나가는 그런 게 부담이 되기도 하고. 저희가 초보 농부이다 보니까 소득이 안 나면은 그다음 바로 갚아나가는 것도 힘든 거고 다달이…"

간신히 창업하더라도 초기에는 소득 창출이 쉽지 않은 탓에 빚 부담만 쌓였습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청년, 도시로 돌아가는 청년이 대부분이라는 목소리도 잇따랐습니다.

의성군 사업 포기 청년
"다들 실습하다가 보면 조건이 안 맞다 보니까 상당수가 많이 나가셨죠. 의성에 다른 청년지원사업들도 되게 많았던 거로 기억해요. 거기도 보면 잠깐 왔다 나가시는 분들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실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의성군의 스마트팜 조성 사업에 참여한 청년 농업인 137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69명이 교육조차 다 이수하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그나마 창업한 경우는 10명 중 2명 수준(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1조 원 들인 농촌 청년 정책, '매우 효과적' 응답은 '0%'

'빛 좋은 개살구'격인 귀농·귀촌 청년 정책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지난달 발표한 '농촌지역 청년정책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농촌 지역 청년 관련 사업은 38개, 광역지자체가 추진한 사업은 145개입니다.

정부가 투입한 예산은 7,995억 원, 광역지방자치단체가 투입한 예산은 3,345억 원으로 합치면 1조 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정책이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전무했습니다.

농경연이 농촌 청년 1,073명을 대상으로 지자체의 정책 효과성을 점검한 결과 '매우 그렇다'라는 응답은 0%였습니다.

'그런 편이다'라는 긍정 응답 역시 2.1%에 그쳤고, 부정 응답은 69.5%에 달했습니다.

■ 다시 도시로 '역귀농'…관리 당국은 '모르쇠'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되돌아가는 이른바 '역귀농' 사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계청 기준 2012년 57,000여 명이었던 대구·경북의 청년 농가만 해도 10년 사이 25,000여 명으로 절반 넘게 줄었지만 정확한 실태 파악도 없고 통계 자료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히 역귀농 원인 조사나 예방 대책 수립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경상북도 관계자
"청년들이 본격적으로 농촌에 내려오고 한 게 한 4~5년 정도 되거든요. (청년 농업인의 경우) 과도하게 뽑힌 경향이 있어요. 하도 청년, 청년 그러다 보니까. (역귀농 현황을) 조사해볼 필요는 있는데, 정확하게 조사는 쉽지는 않은 거 같아요. 하려면 용역을 주고 비용을 들여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데…"

다만 역귀농 현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있습니다.

농촌진흥청과 농경연은 2014년부터 5년간 귀농인 1,039명을 장기 추적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추정된 역귀농률은 약 8.6%로 적어도 귀농인 10명 중 1명은 귀농을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역귀농을 택한 주요 요인은 '영농 실패'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귀농·귀촌 홍보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역귀농 통계나 실태 등을 파악해서 정착률을 높이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은 처음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다음 편에는 위기에 놓인 농촌에서 말로만 청년을 외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고민해 봅니다.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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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 신상응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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