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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에 임금협상 전향적 태도 촉구
창사 첫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17일 경기 수원 삼성전자 부품연구동 (DSR) 건물 앞에서 전국삼성전자노조 조합원들이 모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상범 기자


2000여명에 달하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노동조합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회사가 임금 협상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오랜 ‘무노조 경영’ 전통이 있던 삼성전자에서 노조가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로 촉발된 성과급 불만에 더해, 경쟁사에 뒤쳐지고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겹치며 직원들의 단체 행동으로 이어졌다. 노사의 깊어진 골이 창사 이래 첫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주목된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17일 오후 12시부터 1시간 가량 경기 수원 삼성전자 부품연구동(DSR) 앞에서 문화행사 형식의 집회를 개최했다. 주최측은 “노조 굿즈 1500개를 준비했는데 모두 소진됐다”며 약 2000여명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노조는 회사가 대화 요구에 응할 것, 임금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설 것 등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는 임금 협상이 결렬된 데 따른 것이다.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2023년·2024년 임금교섭을 병합해 10여차례 교섭을 벌여 왔다. 사측은 마지막 제시안으로 5.1%의 임금 인상을, 노조는 6.5%을 요구했다. 노조는 성과급 제도 개선과 재충전 휴가 신설도 요구했으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회사는 노조 대신 지난달 노사협의회와 협의해 5.1% 인상률을 관철했다. 회사는 노조 가입률이 20%에 불과한 만큼 나머지 80% 직원들의 임금·처우는 노사협의회와 결정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전삼노는 지난 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74%의 찬성표를 얻어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얻었다. 전삼노 외에도 사무직·구미공장·동행노조 등이 쟁의행위에 찬성했다. 반면 스마트폰·가전 등을 만드는 DX사업부 노조는 쟁의에 불참하기로 했다.

17일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집회를 열 계획이었던 경기 수원 부품연구동 (DSR) 건물 로비에 회사측에서 조성한 화단과 함께 출입금지 팻말이 놓여 있다. 김상범 기자


그동안 삼성전자 노조 임원들이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인 적은 있으나, 조합원 수천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한 조합원은 공개 발언에서 “한 때 삼성전자 직원이라면 누구나 ‘초격차’라는 말에 가슴이 떨렸을 것이다”라며 “하지만 지금의 삼성은 1등은 커녕 3등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해 15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적자가 메모리 시장의 불황 탓도 있지만, 감산 시기를 놓친 데다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까지 빼앗긴 경영진 실책이 누적된 결과라고 본다. 인공지능(AI) 반도체에 탑재되는 HBM은 일반 메모리보다 이익률이 높은 차세대 먹거리로 꼽힌다. 이 조합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이 있는 경영진은 오히려 넉넉한 퇴직금을 챙겨갔으며 임원 보수한도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17% 인상됐다. 삼성은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과급 0%’는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은 매년 50% 가량을 지급하던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지난해에는 지급하지 않았다. 노조는 삼성전자의 임금체계가 낮은 기본급을 성과급으로 보전하는 구조라 임금 손실이 크다고 본다. DS 직원들이 주축이 된 전삼노 조합원 숫자는 지난해 말 1만명 수준에서 이날 기준 2만6000명에 달할 정도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단체행동이 파업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삼성전자에서는 1969년 창사 이후 파업 전례가 없다. 이현국 노조 부위원장은 “삼성이 갖는 영향력은 크다. 반도체 공장이 멈춘다면 회사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피해를 입는다”며 “노조는 앞으로도 평화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회사의 전향적인 변화가 없다면 (노조를) 파업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다음달 24일에는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임협 과정에서 쌓인 불신이 노사관계에 줄곧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이날 행사는 DSR 건물 로비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사측이 주말간 로비에 ‘봄맞이 화단’을 조성한 데 이어 이날 안전사고 우려를 들며 출입구를 봉쇄하면서 결국 인근 출입로에서 진행됐다. 노조 측은 사측의 일방적인 조치에 항의하며 “노조 탄압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 측은 “소통 채널은 항상 열려 있으며, 대화 테이블이 만들어지는 대로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AI 반도체 수요로 올해 메모리 시장이 호전되면서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올해 1분기 1조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흑자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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