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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투자증권부장
여당 총선참패는 공공선·신뢰 없이
선심성 감세·개발 공약만 남발한 탓
공동체 의식 갖고 미래 고민하는 등
'진짜 보수' 위한 처절한 성찰 있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올 2월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집권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호소력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보수는 이제 끝났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이 채 2년도 채우지 않은, 다른 말로 집권 프리미엄이 아직 살아 있는 상황에서 치른 총선에서 참패를 당했으니 언뜻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사람의 이마에 ‘진보’ ‘보수’라고 써 붙이고 다니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젊어서 보수주의자는 심장이 없는 것이고, 늙어서 진보주의자는 머리가 없는 것이라고 철학자 칼 포퍼도 말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에서 보수가 패했다는 규정조차 마뜩잖은 게 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보인 행태가 전혀 보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의 가치는 무엇인가. 자유와 책임, 공공선과 안정 희구, 신뢰와 신의 중시, 기성 질서와 현실에 대한 인정, 약자 배려 등을 추구한다.

하지만 여당은 이런 가치를 보여 주지 못했다.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선거 직전까지 윤 대통령이 끌고 간 24번의 민생 토론회를 보자. 떠오르는 것이라곤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와 선심성 감세 등이 대부분이다. 마치 이런 것들이 보수를 집결시킬 요술 방망이가 돼주리라 믿는 것 같았다. 나라 빚이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고 선심성 공약에 세수도 태부족인 정부가 내놓았다고 보기 힘든 앞뒤 다른 정책이 쏟아졌다. 그것도 쉼 없이.

더 큰 문제는 신선한 발상의 대책이 아예 없었다는 점이다. 부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보수는 여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진정 저성장, 저출생 사회를 걱정한다면 젊은이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파격적 가격의 주택 공급 같은 ‘킬러’ 콘텐츠를 더 고민했어야 했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아 걱정이라면서 보금자리론, 신생아특례 대출로 결과적으로 기존 주택 가격을 떠받치는 데만 치중한 뻔한 대책 대신 말이다.

“선거 때는 다 그런 거 아니냐” “자유시장주의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윤 대통령 스스로 우리 경제가 ‘변곡점(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서 있다고 하지 않았나.

신뢰와 신의를 중시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진정 고민하는 보수 정부라면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 정권은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부자(富者) 정당의 굴레를 벗기 어렵다. 이제 보수는 자유를 말하기 앞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의사 파업 문제도 그렇다. 의사를 집단이기주의로 내몰기 앞서 장기간 파업으로 고통받을 환자와 그 가족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윤 대통령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끌고 갈 일은 절대 아니다. 아집으로 점철된 윤 대통령 자신이 이기주의 화신으로 스스로 묘사했던 의사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그렇다고 오해는 마라. 노파심에서 말하면 진보가 선거에서 이겼다고 진짜 진보일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진보가 이겼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진보에 대한 모독이다. 편법 대출 의혹의 양문석(경기 안산갑), 이대생의 미군 성상납 발언 당사자인 김준혁(경기 수원정) 등이 다 의원 배지를 달지 않았나. 공천 과정에서 비명횡사로 독재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인 이재명 대표 아래 더불어민주당, 문제적 인물을 긁어 모아놓은 듯한 조국혁신당의 당선자 면면을 보고도 눈감는다면 모를까 진보 진영의 승리라는 표현은 가당찮다.

이 나라에 보수가 없듯 진보도 아직 없다. 부패한 진보가 어디 진보인가. 기껏해야 복수 혈전 프레임으로 짜인 선거에서 승리한 가짜 진보가 승리를 이유로 진보를 참칭해서는 안 된다. 가짜 보수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악용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다만 진보의 전혀 진보스럽지 않음을 강조하기보다 보수에 회초리를 들고 싶은 마음에 진보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접는다.

그런 맥락에서 선거 참패를 두고 원인으로 지목되는 김건희·이종섭·황상무 사태는 본질적이지 않다. 보수답지 못한 처신이 더 문제다. 보수를 참칭했던 보수 진영이 진짜 보수가 된다면 보수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처절한 성찰이 필요하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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