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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녹색정의당 의원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계은퇴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심상정이 총선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진출한 지 20년 만이다. 마지막 소감은 “진보정치 소임을 내려놓는다”였다.

그는 심블리(심상정+러블리)란 별명을 얻은 진보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그의 퇴장을 전하는 기사의 댓글창은 살벌했다. 2년 전 대선에서 끝내 단일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 노동자 정당의 정체성을 포기한 채 정치적 올바름(PC)만 앞세웠다는 비판, 후계자 없이 혼자 대선·총선·당권경쟁에 나서 과욕을 부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당 출입 경험이 없고 정치에 큰 관심 없는 나에게, 이런 평가들이 온당한가를 검증할 자격·능력은 없다. 심상정이 내려놓은 진보정치의 소임을 이어받을 후배들, 진보정치가 진짜 종언을 고했는지 연구해야 할 학자들이 머리를 싸맬 주제다. 다만 한국 진보의 고질적 한계들을, 한 사람 탓으로 돌리기 어렵겠다는 생각만은 지울 수 없다.

정치 얘기는 여기까지다. 오늘 주제는 심상정이 여의도의 바깥, 세상의 변방에서, 힘없고 소외받은 이들과 함께하며 남겼던 작지 않은 족적에 관한 이야기다.

심상정은 서초동과 별다른 악연(수사·재판)이 없었음에도, 사회부 기자들에게 익숙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공론화되기 전부터 여기에 관심을 가져, 사태 초기부터 토론회를 열거나 18대 대선(중도사퇴)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공약으로 내걸며 세상의 관심을 촉구했다. 심각성 알리기를 넘어 피해자 구제결의안을 대표 발의하거나 특별법 제정을 줄곧 역설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언급은 10년 이상 이어졌다.

2013년 삼성그룹 노조파괴 문건을 폭로한 이도 심상정이고, 2017년 우리은행 채용비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도 그였다. 지난해 전세사기특별법 통과에도 역할을 했다. 특히 2022년 대선 토론에선 유권자의 관심이 가장 쏠리는 ‘마지막 1분’을, 공군 성폭력 피해자 이예람 중사 얘기에 할애했다.

사적으론 한국일보 사람들도 신세를 졌다. 11년 전 기자들이 편집국 밖으로 쫓겨나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정치인이 그였다. “환노위 현안질의에서 이 문제(부당한 직장폐쇄)를 분명히 짚겠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그는 곤경에 처한 이들을 찾아 힘을 보태길 주저하지 않았다.

20년 내내, 심상정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었던(민주평화당과의 공동교섭단체 제외) 군소정당 소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거물 정치인처럼 대형 SOC 투자를 따온다거나 큰돈을 푸는 ‘화끈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진 못했다. 대신 자본과 공권력에 의해 내몰린 약자들을 만나러 부단히 현장을 찾았고, 돈과 권력이 마음을 고쳐먹을 때까지 외치고 또 외쳤다.

이제 여의도에 누가 남았는지를 보면 심상정의 퇴장은 더 아쉽다. 지지자를 몰고 다니는 정치아이돌, 주군의 심기와 안위를 지키는 호위무사, 자기가 뱉은 발언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르시시스트는 분명 보인다. 그러나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고 세상 부조리에 사사건건 나서 따지고 귀찮게 하는, 심상정 같은 ‘홍반장형’ 잔소리꾼을 찾기는 어렵다.

10년을 주야장천 한 주제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한 사람에게 오롯이 나눠줄 줄 알았던 정치인이 떠났다. 심상정의 그 오지랖을 그리워할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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