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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원제 | 논설위원

솔직히 말해, 이번 총선 결과는 아쉽다. 유례없는 무능과 전횡을 드러낸 윤석열 대통령을 심판한 건 분명하다. 더 이상 지금처럼 갈 수는 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그럼에도 2.6% 부족하다. 윤 정권의 국정 난맥을 전면 차단하고 확실하게 리셋하기에는 300석 중 8석, 2.6%가 모자란다.

결과적으로는 윤 대통령의 변화를 전제로 국정 운영의 시간을 더 준 셈인데, 이 또한 한자락 민심의 표출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대로 3년을 더 지켜봐주기엔 나라의 운이 이미 기진맥진한데다, 국민의 삶 또한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암울한 현실은 객관적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2021년 세계 10위였던 경제 규모는 2022년 13위로 3계단 떨어졌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쳐, 국제 경제 위기나 코로나 위기를 겪던 때를 빼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구제금융 위기를 겪은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일본(1.9%)보다도 뒤졌다.

국내총소득(GDI)도 1.4% 느는 데 그쳤다. 소비자물가가 3.6% 오른 것을 고려하면, 실질소득은 마이너스인 셈이다. 올해도 물가는 잡힐 기미가 없다. “대파값 875원이 합리적” 운운한 윤 대통령의 물정 모르는 발언이 왜 그토록 큰 분노로 이어졌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민주주의 지수도 악화일로다. 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 연구소가 지난달 공개한 연례보고서(‘민주주의 리포트 2024’)를 보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179개국 중 47위로 하락했다. 2020~2021년 17위에서 윤 정권이 출범한 2022년 28위로 떨어진 데 이어, 또 1년 만에 19계단을 미끄러졌다. 이 연구소는 심지어 한국을 ‘독재화가 진행 중’인 42개 나라 중 하나로 꼽았다. 자유민주주의 최상위 그룹(32개국) 중 독재화 국가로 분류된 곳은 한국이 유일했다. 연구소는 “윤 대통령이 전 정부 인사들을 처벌하기 위해 강압적인 조치를 취하고, 성평등을 공격했다”고 짚었다.

앞서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23년 ‘세계 언론자유 지수’ 순위에서도 한국은 47위였다. 48위가 수리남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내내 41~43위를 오갔고, 3년 연속(2019~2021년) 아시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가 이처럼 경제·민생과 민주주의 모두에서 한꺼번에 추락한 적은 없다. 무능의 신기록이요, 전횡의 금자탑이다. 불과 2년 만에 나라 꼴이 엉망이 되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런 추상적 수치를 현실의 생생한 익스트림 체험으로 체감하게 한 것도 윤 대통령 자신이다. 아무 근거도 없이 사상 최대로 연구·개발(R&D) 예산을 뚝 잘라 국가경쟁력에 구멍을 냈고, 이에 항의하는 카이스트 졸업생을 ‘입틀막’ 해 끌어냈다. ‘김건희 특검’은 거부권을 써서 막고,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해병대 외압’ 의혹 수사는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국외로 내보내 회피하려 했다. 민생 대처엔 게으르고 한가한데, 부인과 함께 국빈 대접 받고 맛집·명품 쇼핑하는 데는 바지런하다는 인상을 줬다.

선거 결과로 드러난 민심과 달리, 앞으로의 3년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16일 국무회의에서 내놓은 윤 대통령의 총선 관련 발언은 오히려 회의와 불안감을 키운다. 많은 국민은 국정 기조와 행태 전반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전환을 기대했을 터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며 부분적 보완에 그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올바른 국정 방향을 잡고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국민은 듣고 싶었지만 아예 빼버린 대목도 많다. 부인 의혹과 추문, ‘런종섭’ 사태에 대한 해명과 사과, ‘협치’의 상징적 조처라 할 야당 대표와의 만남 제안과 거부권 자제 표명 등은 없었다. 앞으로도 권력 행사의 최우선순위를 자신과 부인 방탄에 두고 그동안과 똑같이 나 홀로 국정을 펴나갈 것임을 선언한 셈이다.

8석 안전판을 구축했다는 안도감의 표출일 것이다. 그러나 표피적 변화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이요, 착각이다. 최후 경고마저 무시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보수층에서도 인내의 바닥을 드러내는 이들이 속출할 것이다. 거대한 민심의 파고 앞에 2.6% 방어벽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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