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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우리들의 못다한 수학여행
2014년 4월,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제주에 도착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지난 3월 27일 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나흘 동안 단원고 학생들이 반별로 단체 사진을 찍을 예정이던 제주 산굼부리, 섭지코지, 용머리 해안, 정방폭포, 한림공원 등을 찾았다. 필름 카메라로 여행지를 촬영하고 밀착인화 형태로 재구성했다. 정효진 기자


제주로 가는 배


제주항


배우러 가는 여행이었다. 수학여행이었다. 배울 것은 차고 넘쳤다. 열여덟은 자고 일어나면 조금 크고, 자고 일어나면 조금 더 클 때였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서도,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에서도, 친구들과 소곤거리며 나누는 대화에서도 배울 때였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여행이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이미 상관없었다. 누구와 버스 옆자리 짝이 될지, 누구와 같은 방을 쓰게 될지를 더 고민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꺄르르 웃고, 해가 내리쬐면 또 그대로 꺄르르 웃는 여행이었다. 여행이어야 했다.

산굼부리


용머리 해안


용머리 해안


정방폭포


한림공원


2014년 4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1·2·3반은 섭지코지·산굼부리·정방폭포에서, 4·5·6반은 섭지코지·용머리해안·정방폭포에서, 7·8·9·10반은 산굼부리·용머리해안·한림공원에서 도착하자마자 단체 사진을 찍기로 되어 있었다. 몇주 전 학교에 핀 벚꽃 아래에서도 반별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처럼 누구는 앉고 누구는 서고 누구는 목말을 타고 누구는 누구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함께 카메라를 보고 웃을 예정이었다. 떠들썩하다가도 찰칵 소리가 나면 온 세상이 조용해질 거였다. 한창 유채꽃이 피어있을 제주도의 노란빛을 기대하며 떠난 여행이었다.

제주에는 도착하지 못했다. 수요일이었다. 수천 번의 ‘만약에’와 수만 번의 절망과 기다림, 분노가 있었다. 전국의 수학여행은 모두 취소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그중 하나였다. 똑같이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일정이었다. 우리였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결국 우리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뉴스를 보며 울고 화냈을지언정 삶이 멈추진 않았다. 나는 잃은 것이 없었다. 수학여행을 못 간 것쯤은 잃은 것이 아니었다.

이번 봄에도 제주는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열번째 봄이었다. 10년 전 못 간 수학여행을 다시 가는 셈 치고 제주로 가는 배를 탔지만 이 여행은 수학여행이 아니었다. 혼자 가는 수학여행은 수학여행일 수 없었다. 열여덟의 마음에서 이미 멀어진 나는 수학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거기 있었을지 모를 너와, 너의 친구들과,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괜히 빈 뷰파인더에 대고 한마디씩 건네는 게 다였다. 아마 이쯤 앉아있었겠지, 아마 이쯤 서보라고 했겠지, 아마 이런 걸 신기해했겠지 하는 모든 가정은 결국 가정일 뿐이었다. 푸른 봄을, 노란 봄을, 반짝이는 봄을, 희미한 봄을 보면서 그 어디론가 시간여행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산굼부리


섭지코지


용머리 해안


협재 해수욕장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너희와 겹쳐 보였다. 꼭 수학여행으로 온 학생들만은 아니었다. 이제 걸음마를 뗀 너도, 세월만큼 얼굴에 주름이 새겨진 너도 있었다. 너는 아빠한테 업혀 사진을 찍고는 “힘들다”고 했고, 너의 아빠는 “업은 건 난데 네가 뭐가 힘드냐”고 했다. 너는 바닷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정리해 가며 친구들과 셀카를 찍었다. 너는 귤 모양 핀을 머리에 꽂고 걸었다. 너는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 앞 바위에 올라서서 슈퍼맨 포즈를 지었다. 크고 작은 돌을 밟으며 지나가야 하는 바닷가에선 서로 손을 잡아줬다. 너는 유치하다면서도 공원 안에 있는 악어를 한참 동안 바라봤고, 말이 언덕을 달려가는 걸 난생처음 본다는 듯이 지켜봤다. 너는 한라봉 초콜릿이 담긴 흰색 비닐봉지를 들고 줄 맞춰 걸었다. 10대인 너도, 50대인 너도 있었다. 10대인 나도, 50대인 나도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매표소에서 서로를 지났을지도, 비에 질척이며 남은 네 발자국이 없어지기 전에 내가 다시 그 땅을 밟았을지도, 내가 찍은 사진 구석 어딘가에 너와 네 친구들이 조금 담겼을지도. 하지만 10년을 지나 스물여덟이 된 나는, 그래서 서른여덟도 마흔여덟도 될 나는, 아직 열여덟인 너희에게 숨 한 모금씩 빚졌을 수밖에. 이제야 10년 전 어른들처럼 미안한 마음이 든 건 그래서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던 열여덟이 아니라서, 열여덟이 얼마나 어리고 아까운지 아는 어른이 되어서.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더 이상 같이 욕하기만 할 수 없게 되어버려서 조금은 더 마음이 무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산굼부리


한림공원


한림공원


우리는 시작하지 못한 여행에서도 배웠다. 멈춰도 그만두지 않는 생을 통해, 혐오에 혐오로 맞서지 않는 어른들을 통해, 여전히 세상을 믿는 아이들을 통해, 길에 지나다니는 노란 리본을 통해 배웠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마음을, 그럼에도 웃는 마음을 짐작해 가며 배웠다.

출발하기 전 나는 무사히 배가 제주항에 도착하면 여행이 끝난 기분일 것 같았다. 모든 여행의 끝은 돌아옴이니까, 제주에 도착하는 것이 돌아오는 거였으니까. 다시 제주를 떠나오기 전에 나는 이 여행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세월호를 떠나왔지만 세월호에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산굼부리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 앞에는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라는 문구가 네온사인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네가 없는 여행이라 재미없는 게 맞았던 것 같다.

섭지코지


협재 해수욕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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